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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달도 없는 칠흑같은 바다에서 우리가 탄 배는 격랑 속의 나뭇잎 같았다. 멀미약에 취해 몽롱한 가운데 나는 의자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등을 등받이에 딱 붙이고 빨리 시간이 가기만 바랐다. 모비딕에 맞서 싸우는 피쿼드호의 선원들 심정이 이랬을까. 후배는 화장실에 간다더니 함흥차사였다. 걱정됐지만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볼일을 보고 나와 돌아오는 중에 배가 심하게 흔들려 넘어진 김에 계속 누워 있었단다. 거문도 항에 닿아 배에서 내려 그 얘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역시 거문도는 만만한 섬이 아니었다. 다들 여관에 짐을 부려놓고 식당으로 갔다. 헉, 생선회가 쟁반만한 접시마다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그 다음은 노래방. 평소 혼자 여행하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자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은 언제 그랬냐 싶게 쾌청했다. 잔잔한 바다는 은색의 갈치 비늘처럼 반짝였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녔다. 거문도는 '거문도 사건'이라는 역사가 있다. 구한말 영국해군의 거문도 점령사건.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이드들은 여성들이 많았는데 한껏 멋을 부렸다. 난 전날 입고 온 겉옷을 또 입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한다는 배낭여행의 철칙이 몸에 밴 탓이다. 윗옷을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다행히 땀내는 안 났다.
다음 코스는 보성 벌교였다. 투어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빠듯했다. 후배와 선착장으로 가면서 문득 소설가 한창훈이 생각났다. "아 참, 한창훈이 거문도에 산다고 했는데." 후배가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예요?"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눈 앞에 그 한창훈이 있는 게 아닌가. 이목구비가 진하고 너펄거리는 반백의 곱슬머리가 영락없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사람인 듯한 남자와 함께. 나는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다가가 "한창훈 선생님이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한창훈은 나를 힐끗 보고 고개를 돌려 상대방과 다시 얘기를 나눴다. 어라? 머쓱한 나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소설가의 시큰둥하고 무심한 태도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한창훈은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개성있는 소설가다. 바다를 터전으로 먹고사는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린다. 거문도에서 태어나 청년시절 밑바닥 생활을 경험으로 한 감칠맛 나는 소설에 빠져 한동안 열심히 찾아 읽었다. 에세이도 있다. 그 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 사나이 한창훈이 밥상에 올렸던 해산물에 대한 글이다. 읽으면서 계속 입맛을 다셨다. 갈치, 삼치, 문어, 고등어, 홍합, 노래미, 거북손, 미역, 우럭…. 그에겐 섬 생활이 삶의 방편이겠으나 고달픈 도시생활자들에겐 꿈의 낙원으로 다가온다. 고등어회를 한번 맛보면 다른 회는 쳐다도 안 본다고? 거문도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날을 고대하고 있다. 고등어회와 거북손의 기막힌 맛을 상상하며.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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