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에 없는 대전·충남
2021-05-05
대전시민과 충남도민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흘린 땀방울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넘어진 소가 앞다리는 거들뿐 결국에는 뒷다리에 하중을 실어 몸을 세우 듯, 대전충남은 민주화운동을 전국화로 일으키고 때로는 주저앉지 않도록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대전역에서..
2021-05-05
정완숙 (사)디모스 대표는 이번 기획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망설이는 목소리가 휴대폰 수화기 너머 느껴졌다. 자신은 1987년 대전에서 전개된 민주항쟁에 노력했던 모든 시민 중 한 명이고, 민주화운동이 개인의 역사처럼 여겨질 것을 걱정한다고 했다. 정완숙 대표는 "대전..
2021-04-28
"내 아들딸들이 즐길 곳이 하나쯤 있어야지 않겠냐고 그렇게 모금 운동이 시작됐어요, 예산이 부족하니 업자에게 공사비 대신 땅을 떼어주곤 했죠"충남도체육회에서 시작해 대전시체육회에서 사무차장으로 2000년 7월 퇴직한 송기선 씨는 공설운동장을 만들자며 학교에서 모금 운동..
2021-04-28
한국전쟁에서 휴전을 맞은 지 5년 차 충남과 대전은 종합운동장을 갖는 꿈을 꾼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육상트랙과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흙으로 쌓은 관중석 그리고 야구와 배구, 농구, 수영까지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종합 스포츠타운 말이다. 대전공설..
2021-04-21
충남도민들이 모은 성금을 기반 삼아 출범한 충남대학교는 도민들의 열망을 흡수하는 용광로이었다. 지역발전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자는 뜻에서 돈이 없는 도민들을 쌀과 보리를 내어 학교 설립을 도왔다. 1952년 6월 충남대 문리과대학은 대흥초등학교 교실과 법원 일부 건물을..
2021-04-21
홍승원 대전기독요양병원장은 1969년 부속병원 없는 충남대 의과대에 입학했다. 의과대 인가를 받아 1년 전에 신입생을 처음 받았으니, 홍 원장이 입학한 때는 졸업생 없는 의예과 1~2학년 160명이 재학생의 전부였다. 현재 충남대병원 행정동으로 쓰이는 문리대 교사에서..
2021-04-15
"중교에서 한 채 한 채 들어서던 하꼬방은 첫집이 뚜꺼비집처럼 웅크리고 세워진 지 석 달도 못 되어서 무려 100m도 넘는 일렬종대로 변했다. 하꼬방들의 모습은 오뉘처럼 닮아 있었다. 우리는 달바라기. 달을 보고 살아요. 태양은 눈부셔서 눈물이 나요. 그래서 밤마다 달..
2021-04-15
대전은 어떻게 도시가 되어 인구 150만 명의 삶을 품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철도와 도로, 상·하수도, 교육, 의료, 문화라는 생태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전쟁 후 충남과 대전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1951년부터 시민들의 삶을 기록한..
2021-04-07
대전은 어떻게 도시가 되어 인구 150만 명의 삶을 품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철도와 도로, 상·하수도, 교육, 의료, 문화라는 생태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전쟁 후 충남과 대전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1951년부터 시민들의 삶을 기록한..
2021-04-06
"충남도청 고전적 건물 일직선 상에 현대적 대전역을 설계했지, 그런 대전역을 흔적도 없이 허물다니 참 아쉬워"대전역을 2년에 걸쳐 설계하고 착공 때는 감리를 맡아 준공까지 이끈 이상순(87) 옹은 1950년대 재건에 몸부림치는 대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1957년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