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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재단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의료와 교육을 통한 지역 동반성장 비전을 발표했다. 사진을 2004년 대전 둔산동에 개원한 대전을지대병원. (사진=대전을지대병원 제공) |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6년 서울 중구 태평로에 '박산부인과의원'가 개원했고, 을지재단의 모태가 됐다. 갑작스런 한국전쟁 속에서 '피란' 대신 육군병원에 찾아가 부상병을 돌본 의사 범석 박영하(1927~2013) 박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 간호장교로서 대전 제2육군병원에서 부상병을 지킨 간호사 지천 전증희(1929~2023) 전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함께 가정을 일구며 시작한 의료사업이었다. 을지로3가에 박영하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1967년 박영하 산부인과는 종합병원으로 승격해 '을지병원'이라는 오늘날의 이름을 갖는다. 병원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환자가 고마운 마음으로 대신 갖다 준 꿩이나 닭이 병원 옥상에서 이른 아침을 깨우곤 했다고 박영하 박사는 회고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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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대학교 간호학과 학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을지대병원 제공) |
을지재단은 이때부터 환자가 필요한 곳에서 의료기관을 세우고 육영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1981년 대전 목동에 대형종합병원을 건립하고 같은 자리에 의과대학을 출범시켰으며, 2021년 경기 동북부 의정부을지대병원 개원하고 을지대학교 의정부캠퍼스를 개교했다. 이로써 을지재단은 대전을지대병원과 서울 노원을지대병원, 경기 의정부을지대병을 뿌리로 을지대학교 대전본원과 성남캠퍼스 그리고 의정부캠퍼스 교육체계를 갖췄다. 을지재단은 대전에서 의료 지방화시대의 개막을 상징한다. 수도권 대형 종합병원들이 서울 강남 개발을 쫓아 강남에 병원을 세우려 노력할 때 을지재단은 1981년 4월 중구 목동에 17개 진료과에 218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개원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되던 대전에서 보건의료 씨앗을 심었다. 또 1983년 서울보건전문대학을 전격 인수한 을지재단은 1996년 12월 대전을지병원에 의과대학 설립인가를 정식으로 획득하면서 대전에서 지역에 필요한 의사를 양성하는 육영사업의 주체가 됐다. 1997년 3월 을지대의예과 신입생 제1회 입학식은 교내가 아닌 대전시민회관에서 개최되어 당시 홍선기 시장이 참석해 축하했을 정도로 을지재단뿐만 아니라 대전시민들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을지재단은 이를 계기로 1983년 대전을지병원을 교육기관인 학교법인 을지학원에 무상 출연해 의료인 후학양성의 기반을 제공했고, 을지종하병원은 을지대학교병원이 되었다. 또 2004년 대전 둔산 개발에 발맞춰 둔산동에 대전을지대병원을 신설하고 경기 북부 의료취약 지역에 2021년 병원을 세워 주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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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재단 창립 70주년 엠블럼 |
을지재단의 또 다른 축은 교육이다. 재단은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람을 키우는 일' 역시 의료기관의 핵심 책무로 여겨왔다. 을지대는 의과대학, 간호대학, 보건과학대 등 보건 계열 교육을 통해 현장 중심의 의료 보건 인재를 양성해 왔으며, 이는 지역과 국가 의료를 떠받치는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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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의료진이 군 헬기로 이송된 환자를 응급실로 긴급 이송하고 있다. (사진=을지대병원 제공) |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은 "70주년은 단순한 기념의 숫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앞에서 의료와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다시 묻는 시점"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 앞에서 가장 먼저 고민하고, 가장 늦게 물러나는 의료기관의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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