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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천 교수 |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에 새 문자인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하면서 간행한 문헌으로서 현재 전하는 것은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어 서울 성북동 간송 미술관에서 소장 보관하고 있는 <간송본>이 유일본이다. <간송본>은 이한걸 씨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 것으로 발견 당시에는 표지와 첫머리의 2장이 없는 상태였는데, 원소유자인 이한걸 씨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소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당시 경학원 교수였던 김태준 교수가 재구하고 이한걸 씨의 셋째 아들인 이용준 씨가 해례본의 안평대군 글씨체를 모사하여 복원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발생하였으며, 이를 복원하는 노력이 학계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2008년 7월에 또 하나의 해례본이 경북 상주에서 발견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런데 이 <상주본>은 그 실체가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았는데, 안동 문화방송국에서 촬영한 화면을 통해 확인된 바로는 <간송본>과 동일한 판목에서 인출(印出)한 것이지만 유독 훼손되고 빠진 부분이 많아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상주본>에는 소장자가 자신의 견해를 붓으로 필사한 것이 있어 그 내용에 관심이 쏠려 있는 정도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세종 28) 음력 9월에 간행한 것으로 창제 목적과 제자 원리를 설명한 한문 해설서이다. 이 문헌은 1962년 12월 20일에 대한민국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국가적·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이렇듯, 해례본은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 체계를 완성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공식적인 문자 해설서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해례본은 당대의 학문적 역량이 총집결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사대부들을 대상으로 편찬했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문에 능통하고 한자의 소리 체계를 정립한 성운학과 태극, 음양오행 등 역학(易學)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했을 정도로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해례본은 「어제 서문」, 「예의」, 「해례」, 「정인지 서문」 등의 내용을 33장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어제 서문」과 「예의」를 묶어 <예의편>이라고 하고, 「해례」와 「정인지 서문」을 묶어 <해례편>으로 구분한다. <예의편>은 세종이 직접 지은 것으로 14행에 매 행 11자의 큰 글자로 새겨져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례편>은 <예의편>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집현전 대제학인 정인지를 비롯하여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선로, 이개, 강희안 등 8명의 집현전 학사들이 상세한 해설을 밝힌 것으로 16행에 매 행 13자의 작은 글자로 새겨져 29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인지 서문」은 신하의 예법을 갖춰 한 글자를 낮추어 적었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을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인류 보편적 문화적·정신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 나라의 문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문헌으로 기록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일무이하다는 점에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 인류 미래의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리고 세계 문자사에서 자국의 문자를 기리기 위하여 한글날을 제정하여 국경일로 삼고 나아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행사를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한글날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품격을 드높이는 기념일이고, 『훈민정음』 해례본은 빛나는 우리 문화유산에 자긍심을 갖게 하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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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익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