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의 시조 풍경-31] 국수 2

  • 문화
  • 박헌오의 시조 풍경

[박헌오의 시조 풍경-31] 국수 2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 승인 2026-09-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한강의 옛 이름인 아리수는 서울 시민의 생명수이자 우리 민족의 고단한 삶과 역사가 담긴 거대한 기록의 책과 같습니다. 과거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서울로 모여든 이들은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치열하게 일하며 오늘날의 경제적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고난의 역사를 품고 도도히 흐르는 한강처럼 우리 사회가 과거의 아픔에 머물지 않고 질서 있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당부합니다.

양수리 두물머리 한데 묶은 아리수

팔당땜 내리꽂는 끝없는 국수가닥

칸칸이 잘라대는 대교(大橋) 밤을 날린 칼끝이다.



서울 간 메밀국수 신기루에 매달렸다

빌딩의 창틀에서 새처럼 깃을 치다

냄비에 오체투지하여 삶의 여한 삶는다



깊어진 밤 강바람에 휘휘말은 불빛들도

한 저범씩 건져 올려 주린 배를 채우니

아리수 구곡간장 돌아 주룩주룩 흘러간다.



<시작노트>

한강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흐르는 한없이 두터운 기록의 책이다. 서울 시민의 눈빛과 꿈과 애환은 한강으로 흐르며 수도민이라고 도도하기 짝이 없다. 그 어깨의 높이만큼 말도 안 되게 비싼 집에서 산다. 그 집값이 한국의 경제이다.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이 나라 백성들의 금언이었고 꿈으로 흘렀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처럼 물길이여 가닥가닥 한강으로 모여서 흐르거라. 민심도 역사도 권력도 한강으로 흐른다. '아리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서울시민은 아리수가 있어서 그 많은 인구가 물을 대먹고 산다. 천강의 물길이 모이고 모여 양수리에서 두물머리가 한데 묶여 팔당댐에서 마지막 국수가닥처럼 내리꽂아 서울시민의 수원이 된다.

서울시민은 그 풍요로운 국수를 먹고 살아간다. 긴 국수가닥을 국수공장에서 칸칸이 자르는 모습을 보았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들이 마치 국수가닥을 자르는 칼날과 같다. 칼날은 끝없는 세월을 자동차의 불빛으로 잘라댄다. 6.25 전쟁당시 한강대교가 폭파되었고, 현대사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역사적인 악몽이 일어난 일 말고는 한강의 수많은 대교들은 불 칼질을 멈춘 적이 없다. 불칼에 잘린 아리수 국수는 높고 높은 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저 산골 촌놈들이 들어앉는 신기루이다. 메밀밭에서 온 촌놈은 마음의 칼을 갈며 허리끈 졸라매고 빌딩의 창틀에 새처럼 올라앉아 깃을 치다가 냄비에 오체투지로 들어가 삶의 여한과 결기를 삶아 국수를 삶는다. 국수 냄비에 비치는 휘황찬란한 불빛과 강바람을 삶아 자신의 몸속으로 흐르는 한강을 의식한다. 서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온 몸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개발도상국가의 국민이 되었다. 뼈저린 이야기로 진짜 빌딩을 올렸다. 아이들이 다시는 가난에 허덕이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는 희망의 나라를 부르며 신명에 찬 피땀을 기쁘게 흘렸다. 반짝이는 아리수는 구곡간장을 돌아 시원하게 흘렀다.

오백년 조공을 바치며 엎드려 살아온 나라, 열강의 밥이 되어 검은 국수를 비비다가 일제에 매국노가 헐값에 나라를 팔아먹어 깨어진 국수 그릇 밑에서 식민지의 국적 없는 노숙자로 땅에 떨어진 국수 가닥을 주워 먹고 살아온 국민, 열강의 개입으로 허리를 잘려 민족 동란을 치르며 밀밭까지 다 불사른 폐허 위에서 눈물로 새 씨앗을 심고 가꾼 나라, 그래도 도도히 흐르는 아리수가 있어서 목숨 줄을 이으며 기적의 불을 지폈다.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거기에 발목 잡히는 내란으로 제 발등 찍지 말고 아리수처럼 줄기줄기 질서 있게 앞날을 향해서 흘러가자. 기성세대의 사자후이다. '나 때'라고 조롱하면 억울하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박헌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태안군, 체험형 축제로 빛난 '안면도 백사장 대하축제' 성료
  2.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3. 충남교육청, 미래교육자문위서 이병도 교육감 '10대 공약' 점검
  4. 이미 결원 24명 대전지검, 공소청되면 정원 더 줄어든다
  5. 충남도, '제4기 충청남도 신뢰건설기업' 모집
  1.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추석맞이 푸드박스 200상자 후원
  2. 여기가 군생활관? 호텔이 아니고~(영상)
  3. 박수현 충남지사, 제2중경 ‘지역 내 도 차원 단일화’ 일축…“유치 논리 지원이 도의 역할”
  4. 더불어민주당 대덕지역위, 추석 맞이 전통시장 장보기
  5. 과학기술정보연구원, 양자암호통신 연동 기술 세계 최초 개발

헤드라인 뉴스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추석연휴 왜 일부 고속도로 기름값만 100원 인하하죠? 대전 주유업계 `불만`
추석연휴 왜 일부 고속도로 기름값만 100원 인하하죠? 대전 주유업계 '불만'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 내리기로 하면서 대전지역 주유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귀성·귀경객의 유류비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기업 재원을 일부 고속도로 주유소에만 투입하면 일반 영세 자영주유소는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22일 지역 주유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추석 연휴인 24~27일 나흘간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재정고속도로 주유소 226곳의 휘발유와 경유 판매가격을 지난 17일보다 리터당 100원씩 낮추기로 했다. 할인에 필..

최초 공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아미타이거 플러스 살짝 공개합니다
최초 공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아미타이거 플러스 살짝 공개합니다

미래의 전장!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아미타이거가 오는 국군의 날 '2026 지상군 페스티벌' 현장에서 공개합니다. 육군이 'Army TIGER+(아미타이거 플러스)'를 본 행사에 앞서 살짝 공개 했습니다. 지난 22일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계룡대 활주로에서 '2026 지상군 페스티벌'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아미타이거를 비롯해 19종 57대의 복합 전투체계가 참가하는 제병합동 훈련을 선보였습니다. 미리보는 지상군 페스티벌 아미타이거의 훈련 모습을 살짝 공개합니다. 금상진 기자미래의 전장!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아미타이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 추석맞이 우수 농·특산물 직거래 큰장터 추석맞이 우수 농·특산물 직거래 큰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