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구법원 뒷길'에 다시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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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구법원 뒷길'에 다시 부는 바람

사회과학부 이현제 기자

  • 승인 2026-09-15 17:24
  • 신문게재 2026-09-16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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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제 기자
"구법원 뒷길로 가주세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기사에게 으레 이렇게 말했다. 목적지는 대전 중구 선화동이었다. 정확한 주소를 말하는 것보다 '구법원'이라는 세 글자가 동네를 설명하기에 훨씬 잘 통했다. 법원이 둔산동으로 옮겨간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그랬다.

아직도 그렇다. 선화동이라고 하면 잠시 생각해야 하지만 구법원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길부터 그려진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 제법 넓은 도로와 그 사이로 이어지는 작은 가게들까지. 한때 그 동네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구법원'은 사라진 기관의 이름이 아니라 동네를 설명하는 일종의 지명에 가까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구법원'이라는 말조차 점점 기억 속 지명이 돼 갔다.

선화동은 한때 대전의 대표적인 주거지면서 법원과 검찰청, 세무서 등 주요 기관이 있어 원도심의 중심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의 여럿이 둔산으로 옮겨갔다. 법원과 검찰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하나둘 빠져나갔고 사람들의 발길도 함께 줄었다. 2020년대 재개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곳곳에는 사람이 떠난 집과 비어 있는 공간이 남았다.

'대전기억 프로젝트'를 취재하며 사라져가는 원도심의 흔적을 좇을 때도 다시 찾았던 곳이 바로 선화동이었다.

그래서 요즘 선화동의 변화를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남다르다.

오는 10월 출범하는 대전지방중대범죄수사청은 세종 임시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 대전 중구 선화동 옛 대전세무서 부지에 새 청사를 짓게 된다. 한동안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던 원도심의 공공부지에 다시 국가기관이 들어오는 셈이다.

여기에 맞닿은 노후 공공청사까지 함께 활용하는 복합개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아직 넘어야 할 절차가 적지 않겠지만 중수청 청사 하나를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공공기능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뀐다면 선화동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대전중수청 취재를 이어가면서 이 과정을 계속 지켜봤다. 중수청의 임시청사가 어디에 들어설지, 대전에는 언제 자리를 잡을지, 신청사 후보지는 어디가 될지 하나씩 보도했다. 옛 대전세무서 부지가 후보로 떠오른 뒤에는 주변 공공부지 활용 가능성도 들여다봤다.

당장 오성장네거리가 엑스포네거리처럼 되진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어릴 적 수없이 오갔던 동네에 새로운 기관이 자리 잡는 과정을 기록하는 데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꽤나 반갑다.

이제부터 더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뤄질 일이다.

중수청은 부패, 경제범죄, 방위사업, 마약, 사이버범죄 등 대전을 중심으로 충청권 전역의 중대한 범죄를 수사하게 된다. 새로운 간판과 번듯한 청사만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는 없다. 정치나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를 해내는 기관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선화동에 들어선 의미도 생길 것이다.

지역에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하나가 들어온다고 과거의 선화동이 그대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대신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간에 사람들이 다시 오가고, 주변 상권과 골목에 새로운 움직임이 생기고, 다른 공공기능과 민간 개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선화동이 될 수 있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이곳을 지날 때 "중수청네거리 가주세요"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대전중수청이 제 역할을 다하는 수사기관으로 뿌리내리고, 그 청사가 들어설 선화동에도 오래전과는 또 다른 활력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던 이 동네에, 다시 사람과 일이 모이는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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