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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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홍승표/수필가,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 승인 2026-09-13 15:2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홍승표
홍승표/수필가,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조금 더 해봅시다. 힘들더라도 직접 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벌초(伐草)를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형제들이 함께 산소를 찾는 것은 집안의 오래된 연례행사이지요. 지난해 형들이 이제 일흔이 넘어서 힘이 드니 벌초대행업체에 맡기자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몇 년만 더해보자고 말씀을 드렸고 올해도 벌초를 나선 연유이지요. 벌초는 단순히 산소 주변의 풀을 깎고 잡초를 뽑는 일이 아닙니다. 추석 성묘나 시제 때 부모님 앞에 섰을 때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조상님을 잘 모시고 있다는 작은 위안을 얻는 일이지요.

산소는 돌아가신 조상님의 안식처이지만, 살아 있는 자식들에겐 마음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승진을 하거나 자리를 옮길 때면 산소를 찾아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올렸지요. 사는 일이 힘겨울 때도 찾아가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 답답했던 가슴이 한결 편안해졌지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여전히 저를 지켜보고 계시고, 잘 되도록 힘을 보태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부모님은 많지 않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여섯 남매를 키우셨지요. 자식들은 공부를 잘했지만 그것이 부모님에게는 자랑이면서 동시에 걱정이었습니다. 학교에 보내려면 작은 살림을 쪼개야 했기 때문이었지요.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땅을 팔아서라도 애들을 공부시켜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지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삶까지 기꺼이 내놓으셨던 부모님의 마음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술 한 잔 편히 사 드시기도 어려운 형편이었지요. 그래도 인정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멋쟁이셨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남을 돕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섰고 의용소방대장으로 봉사하며 이웃을 돌보셨지요. 회갑잔치를 치른 다음 해에도 우리와 함께 벌초를 하셨습니다. 벌초를 마치고 막걸리를 기울이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지요.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지요. 벌초할 때면 하늘의 별이 된 아버지가 더욱 그리운 이유입니다.

어머니도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 평생 알뜰살뜰 살림을 꾸리셨지요. 힘겨운 삶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가끔 땅거미가 내려앉은 우물가에서 어깨를 들먹이며 우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지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몰래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안쓰러워 집안일과 농사일을 열심히 도왔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홀로 말년을 보내셨습니다. '참 복도 없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 한쪽이 아려오지요.

벌초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뒤돌아 산소를 바라보았지요. 산자락이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웠기 때문이겠지요. 벌초는 풀을 베는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고단했던 삶을 생각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곧추세우는 일이지요.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시간입니다. 벌초는 벌초 이상의 의미가 있고, 산소는 산소 이상의 의미가 있지요. 추석날 부모님을 찾아뵈면 못다 한 이야기를 한바탕 풀어놓아야겠습니다. 살아 계실 때 미처 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면 옛 이야기 꽃이 피고,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만발할 것입니다. 해마다 벌초를 하며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것을 보면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모님을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이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승표/수필가,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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