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노무현의 이라크, 이재명의 호르무즈… 데자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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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노무현의 이라크, 이재명의 호르무즈… 데자뷔인가?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6-09-07 17:24
  • 신문게재 2026-09-08 18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김정태 교수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은닉을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그 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이 명분은 미국에서는 통했으나 한국 사회에는 먹히지 않았다. 취임한 지 한 달 남짓 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무게와 국내 반전 여론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 결정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낀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낯선 사막으로 떠나야 하는 것은 부유층 자제가 아니라 대개 평범한 가정의 아들들이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서민·진보 지지층은 "명분 없는 전쟁에 왜 내 아들을 보내느냐"며 등을 돌렸고, 중도적 시민들조차 실익 없는 파병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 우려했다. 반면 원래 그를 지지하지 않던 보수층은 파병은 지지하되 그에게는 끝내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도 민심으로도 얻은 것 없이 신뢰만 깎였고, 다른 정치적 논란들과 겹치며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운까지 맞았다. 정치가 흔들리는 동안 서민들의 살림살이와 미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체감만 남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재명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이라는 유사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미국이 다국적 안전항행 작전에 동맹국 병력 참여를 요청했고, 그 명단에 한국이 올라 있다.

상황은 그때보다 나쁘다. 반미 정서는 가볍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의 뒤통수를 치면서도 목을 조르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북·중·러의 거대한 세력권 앞에서 한국은 미국 의존을 벗어나기 어렵고,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경제가 겨우 숨통을 트고 있는 형국이니, 정부의 외교·안보·경제 역량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이 셈법은 결국 서민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해협에 긴장이 고조되면 국제 유가는 곧장 요동치고, 그 여파는 기름값과 난방비, 장바구니 물가로 전해진다. 파병이 결정되면 배치될 청년들과 가족의 불안도 가볍지 않다. 파병을 거부하면 주한미군 감축과 통상 보복이, 결정하면 국론 분열과 국제적 비판이 뒤따른다. 어느 쪽이든 청구서는 결국 가계와 자영업자, 청년들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 무거운 결정 앞에서 민주시민들은 정부가 어떤 원칙으로 판단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기조 자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 내세운 '실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대선 때 강조되던 검찰 개혁, 언론 구조 개선, 불평등 완화 정책은 로드맵 없이 흐지부지되거나 논란 속에 있고, 그 자리를 대기업 친화적 규제 완화와 자산시장 부양책이 채우고 있다.

노동·조세·부동산 같은 현안마다 정부 입장이 여론과 시장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정작 청년 취업난과 자영업자 폐업, 서민 물가 부담 같은 발등의 민생 과제에는 일관된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 지지층 내부에서조차 "이 정부가 결국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는 물음이 나오는 이유다.

방향이 불분명한 정부가 파병처럼 무거운 결정을 내린다면, 그 결정은 서민을 설득할 논리를 갖추기 어렵다.

이 공백은 교육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 사립대 100개를 고사시킬 위험이 있고, 지방 국립대 등록금 제로 정책 역시 인접 지방 사립대의 몰락을 가속할 소지가 있다. 결국 지방의 교육 기회는 줄고 수도권 기득권만 굳어진다. 자녀 교육에 인생을 걸다시피 하는 부모들에게 이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파병처럼 국민의 삶을 좌우할 결정이라면, 판단 근거와 예상 부담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국회와 시민사회의 공론화를 거치라는 것뿐이다. 밀실에서 결정하고 사후 통보하는 방식은 노무현 정부 때도, 지금도 서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서민의 신뢰를 지키려면 어려운 외교 결정에 앞서, 함께 쌓아 올린 개혁의 성과와 내부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 지금 이재명 정부에는 그 축적이 보이지 않는다. 뚜렷한 좌표 없이 대외적 압박과 지지 기반의 요구 사이에서 흔들린다면, 20년 전의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파병 여부보다 시급한 것은 서민의 삶을 기준으로 삼은 국정 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체제다. 민주시민은 자신이 표를 준 정부에게 그 방향을 물을 권리가 있다. 외교적 시험대에 오르기 전에, 정부는 먼저 이 땅의 평범한 서민들에게 답해야 할 때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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