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적정공사비·적정공기 없는 안전은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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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적정공사비·적정공기 없는 안전은 허상이다

최길학 대한건설협회 충남·세종시회 회장

  • 승인 2026-08-25 17:27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최길학
최길학 대한건설협회 충남·세종시회 회장.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안전'을 외친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하고 법과 제도를 강화하며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 건설업계 역시 안전을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공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 건설현장은 안전하게 공사할 수 있는 충분한 비용과 시간을 보장받고 있는가.

안전은 구호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안전관리자를 배치하고, 추락·붕괴 방지시설을 설치하고, 근로자를 교육하며,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모든 과정에는 비용이 필요하다.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되고 지반이 안정되며 공정별 품질과 안전을 확인하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의 건설현장은 여전히 비용과 시간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자재와 인건비, 장비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안전·품질관리 기준 강화에 따라 현장이 부담해야 할 비용 또한 크게 늘었다.

정부도 이러한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인식해 지난해 적격심사 낙찰하한율을 2%포인트 상향하는 등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에 나선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오랜 기간 현실과 괴리돼 있던 공공공사의 저가낙찰 구조를 개선하고, 제값을 주고 제대로 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건설업계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낙찰하한율이 상향됐음에도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은 여전히 크다. 장기간 누적된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안전·품질관리 기준 강화에 따른 비용 증가, 현실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는 공사비 산정기준과 제경비율 등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사 예정가격 자체가 현실적인 시장가격과 적정 원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낙찰률을 일부 높이는 것만으로는 적정공사비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몇 퍼센트에 낙찰되느냐'에만 있지 않다. 처음부터 적정한 공사비를 산정하고, 그 공사비가 입찰과 계약 과정에서 과도하게 삭감되지 않도록 하는 전 과정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공사비 부족은 단순히 건설회사의 수익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안전관리 인력과 시설, 기술개발과 숙련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그 부담은 하도급업체와 자재·장비업체, 현장 근로자에게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 끝에는 공사의 품질과 국민의 안전이 놓여 있다.

따라서 지난해 낙찰하한율 상향이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면, 이제는 그 효과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현실과 괴리된 공사비 산정기준과 제경비율을 개선하고, 급격한 물가변동을 적기에 반영하며, 안전과 품질 확보에 필요한 비용이 입찰경쟁 과정에서 희생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더욱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공사기간도 마찬가지다. 공기는 단순한 일정표상의 숫자가 아니다. 무리하게 단축된 공기는 공정 간 간섭과 동시작업을 증가시키고 야간·휴일작업과 근로자의 피로 누적을 초래할 수 있다. 집중호우와 폭염·한파 같은 기상이변, 민원과 인허가 지연, 자재 수급 차질 등 시공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발주 단계에서부터 충분한 공기가 확보되지 않거나 발주자의 책임 없는 일정 준수만 강조된다면 현장의 부담은 결국 시공사와 근로자에게 전가된다. 아무리 강력한 처벌제도를 만들어도 현장에 안전하게 일할 '시간'이 없다면 사고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건설안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첫째, 발주 단계에서 적정공사비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현실과 괴리된 표준시장단가와 품셈, 제경비율 등을 지속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안전관리와 품질 확보에 필요한 비용은 경쟁 과정에서 삭감되는 비용이 아니라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필수비용이라는 원칙도 확립해야 한다.

둘째, 적정공기를 발주자의 의무이자 안전의 핵심 요소로 정착시켜야 한다. 공사 종류와 규모, 현장여건, 기후변화와 법정 휴일, 안전·품질 확보에 필요한 기간을 충분히 반영하여 공기를 산정하고, 발주자 귀책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사유로 공사가 지연될 경우에는 공기 연장과 추가비용이 합리적으로 보전되는 계약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정부와 지자체부터 '최저가격'보다 '최고의 안전과 품질'을 구매한다는 발주철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공사비를 낮추는 것만이 예산 절감은 아니다. 부족한 공사비와 무리한 공기로 인해 부실시공이나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보수·재시공 비용은 물론 인명피해와 사회적 갈등까지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건설업계 또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적정공사비와 공기가 확보된 만큼 안전투자를 확대하고 불법·부실시공을 스스로 근절하며, 스마트 안전기술과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제값을 받고 제대로 시공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산업으로 변화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안전과 기업의 생존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적정공사비가 확보되어야 사람과 기술, 안전에 투자할 수 있고, 적정공기가 확보되어야 원칙과 절차에 따라 제대로 시공할 수 있다. 그것이 품질을 높이고 사고를 예방하며 결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길이다.

'빨리, 싸게' 짓는 시대에서 '제값을 주고,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제대로 짓는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

안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사고가 난 뒤 처벌의 강도를 논하기에 앞서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있는 건설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적정공사비와 적정공기는 건설업계만의 요구가 아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바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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