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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동문초 교사 전형옥. |
최근 교실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하는 서늘한 말들이다. 아침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던 시절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교육 현장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불신이 맴돌고 있다. 학생들은 작은 갈등에도 날 선 언어를 서슴없이 내뱉고,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종종 아동학대라는 오해의 칼날이 돼 돌아온다. 학부모와 교사는 교육의 동반자이기보다 방어적인 태도로 마주하기 일쑤다. 가르치고 배우는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교실에서 '존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사라지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교사로서 깊은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숭고한 행위이다. 그 기저에는 내가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존중받고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서로를 향한 예의와 배려가 무너진 곳에서는 어떤 훌륭한 교육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잃어버린 존중의 문화를 회복하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학생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고, 학부모는 내 아이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교사의 교육철학을 지지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어야 한다. 사회 역시 교사가 소신껏 가르칠 수 있는 보호망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의 리더인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사야말로 학생들에게 존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거울이 돼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언어의 품격'을 지키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경청'하는 태도가 그 시작이다.
이러한 믿음은 몇 해 전 만난 한 학생과 보호자를 겪으며 더욱 단단해졌다. 그 아이는 거친 언행으로 수업을 방해했고, 보호자는 정당한 지도조차 아이 기를 죽인다며 거부하는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깊은 좌절감을 느꼈지만, 이대로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이를 다그치는 대신 아침마다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을 지키면 놓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격려했다. 보호자에게도 문제 행동 대신 아이의 작은 긍정적 변화를 문자로 남기며 끝까지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차갑던 보호자도 반복되는 진심에 조금씩 경계를 허물었고, 아이 역시 뾰족한 가시를 거두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갔다.
아이들의 성장은 땅속의 씨앗이 흙을 뚫고 싹을 틔우듯,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천천히, 분명하게 일어난다. 당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쏟은 존중과 애정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 내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꿈틀대고 있음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또한 교사의 몫이다.
존중은 거창한 슬로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아침 나누는 따뜻한 눈맞춤,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 서로를 헤아리는 배려들이 겹겹이 쌓여 빚어내는 삶의 태도이다. 학생은 교사를 믿고, 학부모는 학교를 신뢰하며, 교사는 사랑과 책임을 다해 가르치는 교실.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의 씨앗을 묵묵히 심어갈 때 우리들의 교실은 비로소 푸른 배움의 숲으로 울창해질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메마른 땅에 단비가 스며들듯, 나의 작은 말과 행동 하나가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존중의 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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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