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전 을유해방기념비의 문화유산 등록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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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전 을유해방기념비의 문화유산 등록에 부쳐

고윤수 대전광역시 학예연구관

  • 승인 2026-08-17 17:51
  • 신문게재 2026-08-18 18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고윤수(사진)
고윤수 대전광역시 학예연구관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가 대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 비는 1946년 광복 1주년을 기념하여 대전시민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대전역 광장에 건립한 것으로, 1971년 보문산 공원으로 이전되었다. 동시기 다른 해방비에 비해 규모가 크고, 전통시대의 비석 양식을 갖췄지만, 순한글로 비문을 새겼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비석이다. 하지만 을유해방비의 가장 큰 가치는 한 위인이나 어느 가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세운 시민 공동체 전체의 유산이라는 데 있다.

사실 대전시는 시등록유산제도가 도입된 2020년, 이 비를 대전시의 첫 등록유산으로 지정하려 했다. 등록 보고서 작성 등 필요한 절차들이 거의 완료되었으나, 2021년 대전역 광장으로의 이전이 이슈화되면서 진행이 중지되었다. 한 시의원과 지역의 한 고등학교 역사동아리를 중심으로 을유해방비를 원래의 자리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여기에 기념비 옆에 있던 해태상 한 쌍도 국립서울현충원으로부터 반환받아야 한다는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다른 논의들은 모두 거기에 묻혀버렸다.

당연히 문화유산은 원래 있었던 곳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원칙이 언제나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산의 보존은 그 유산이 지닌 복수의 가치, 보존 환경, 활용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당시 대전시는 비의 이전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비의 설치를 승인해 줄 대전역(국가철도공단)과의 협의 문제도 주요했지만, 보존 환경에 대한 고민이 컸기 때문이었다.

대전역 광장은 차량 회차가 빈번해 매연과 먼지가 많고, 열차 운행에 따른 미세한 진동이 반복되는 곳으로 석조 문화재의 보존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문화유산의 '왜소화' 문제도 있었다. 유산의 보존은 원형의 물리적 보존이라는 좁은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문화유산의 경관, 즉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광장과 커진 역사, 주변의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을유해방비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존재감과 위엄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문화유산의 보존개념과 그것을 구현하는 제도와 정책, 유산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은 꾸준히 진화해 왔다. 그런 점에서 문화유산의 장소성은 분명 중요한 가치지만, 유일무이한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문화유산의 보존을 이야기할 때, 개발의 압력과 기후 위기 같은 문제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가치와 기준들이 생겨난다. 그것들이 서로 경쟁하고 때로 충돌하는 가운데, 우리 역시 계속 어떤 선택과 결정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시대에 '문화유산은 소중하다'라는 소박한 주장만으로는 우리의 유산들을 지켜낼 수 없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가치들이 가진 각각 무게를 재고, 그것들을 조정할 정교한 기준과 원칙들, 다수의 동의를 끌어낼 합리적인 설득의 논리가 필요하다.

광복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광복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인구의 5%도 되지 않는다. 문화유산의 특성이 불가역성에 있듯, 역사는 추체험되지 못한다. 인구의 95%가 체험하지 못한 역사를 어떻게 기념하고, 그것의 가치를 이야기할 것인가. 그날의 함성에서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금 여기서 바로 해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위를 반복하는 것이 답이 될 순 없다. 이같은 사실에 대한 이해와 수용,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숙의. 사실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전부일지 모른다. 광복 81주년을 맞은 올해, 을유해방비의 뒤늦은 문화유산 등록이 그 답을 찾아가는 우리 공동체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고윤수 대전광역시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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