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AI 시대, 다시 묻는 노동의 가치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 AI 시대, 다시 묻는 노동의 가치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지사 대표노무사

  • 승인 2026-08-09 12:00
  • 신문게재 2026-08-10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박범정11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지사 대표노무사
최근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인공지능 도입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면서, 새로운 직무 환경을 마주한 청년들의 마음도 기대와 불안 사이를 오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청년들이 다가오는 AI 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지역의 중소기업과 공공기관 자문을 다니다 보면, 요즘 부쩍 "우리 회사도 AI를 도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만큼 변화의 체감 속도가 빠르다는 뜻일 것이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낯설지 않다. 벌써 'AI가 대체할 직업 목록'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자료가 인터넷을 떠돌고, 그때마다 청년들의 불안도 함께 커지는 듯하다. 그러나 노동 현장을 오래 지켜본 필자는 이 우려에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물론 생성형 AI의 영향으로 일부 직무가 축소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와 자동화가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노동의 종말'이 예고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일을 대체하는 동시에 부품, 정유, 정비, 유통 같은 여러 분야에서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중소기업의 인사·총무 업무에서도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담당자가 상당한 시간을 들여 출퇴근 기록을 확인하고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하거나 각종 인사자료와 문서를 직접 작성했다면, 이제는 근태관리 프로그램과 AI가 상당 부분을 대신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근로자의 지각이나 결근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저성과의 원인이 개인의 능력 부족인지 업무배치나 조직관리의 문제인지, 징계가 과연 적정한지를 판단하는 일까지 AI에 맡길 수는 없다.

이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줄어들더라도 사람의 사정을 살피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오히려 AI 시대에는 이러한 경험과 판단, 소통의 능력이 노동의 새로운 가치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AI 시대 노동의 핵심 과제는 자동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알고리즘의 책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기본법도 이 지점을 겨냥한다. AI가 채용, 평가, 징계처럼 처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쓰일 경우 판단 근거를 설명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최종 결정은 사람이 내리도록 하는 원칙이 그 핵심이다.

AI는 분명 생산성과 편의를 비약적으로 높일 것이다. 위험한 작업은 로봇이 대신하고,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며, 장애인과 고령자의 일상을 돕는 기술도 함께 발전할 것이다.

동시에 그늘도 따라온다.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특정 사람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정교해진 가짜 영상과 음성은 사기와 허위정보에 악용될 수 있다. 공장 설비와 자동차, 의료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해킹이 실제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커지고 있다.

앞서 말한 인공지능기본법이 2026년부터 시행되는 것도,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신뢰성과 투명성을 함께 살피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기술을 빠르게 만드는 일 못지않게, 그것을 안전하게 쓰는 기준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AI 시대의 노동은 결국 기계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답을 이해하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그 결과를 사람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다듬어가는 데 있다.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마지막까지 묻고 확인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한, 노동의 가치는 AI 시대에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결국 기술이 아무리 앞서가도, 그 뒤를 따라가며 사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지사 대표노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 광덕면 물놀이 관리지역 현장 안전점검 실시
  2. 천안시, 여름 휴가철 하천·계곡 불법행위 특별단속
  3. LH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1만가구 돌파…피해 인정도 4만건 넘어
  4.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5. 대전교육청 교육국장에 명달호… 9월 1일자 181명 인사
  1. [현장에서 만난 사람]세계 최대 반도체 공정 장비 제조 기업 ASML 한종호 매니저
  2. '위안부' 기림절, 세종서 만난다… 역사의 아픔 치유, '평화의 장'
  3. 천안시, 고액·상습 체납자 가택수색…승용차 압류·공매 착수
  4. 천안시, 2026 을지연습 전시종합상황실 근무자 사전교육
  5. 천안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스마트폰 가족치유캠프' 운영

헤드라인 뉴스


홈플러스 충청권 5곳 영업 재개…상품 채우기 ‘속도전’

홈플러스 충청권 5곳 영업 재개…상품 채우기 ‘속도전’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가 긴급운영자금 2000억 원을 확보하면서 충청권에서도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장기간 문을 닫았던 점포가 재개장하면서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상품 입고가 충분하지 않은 곳도 있어 매장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 7일부터 영업을 중단했던 전국 67개 점포를 대상으로 가오픈을 진행하고 있다. 충청권에서는 대전 유성점과 가오점, 세종점, 충남 논산점과 보령점 등 5개 점포가 영업 재개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영업 재개는 지난달 13일 임시 휴..

빚투에 청년·고령층 대출 연체 늪... 시중은행 마통·신용대출 연체율 급증
빚투에 청년·고령층 대출 연체 늪... 시중은행 마통·신용대출 연체율 급증

올해 들어 주요 시중은행의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 연체율이 급증하며 20대 이하와 60대 이상 차주들의 부실 징후가 두드러지고 있다. 빚 내 주식 투자에 뛰어든 청년층과 고령층이 대출 연체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9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종욱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6월 말 기준 개인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 연체율은 0.22%로 집계됐다. 2025년 말(0.18%)보다 0.04%포인트 상승했다.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20..

폭염 피해 숲과 계곡으로…음성군 여름 힐링 명소 3선 `눈길`
폭염 피해 숲과 계곡으로…음성군 여름 힐링 명소 3선 '눈길'

연일 30도를 웃도는 가마솥더위 속에서 음성군이 맑은 계곡과 지방정원, 울창한 숲을 품은 봉학골·백야자연휴양림·수레의산 자연휴양림을 여름철 대표 힐링 여행지로 제안했다. 7일 군에 따르면 가섭산 자락에 자리한 봉학골은 '산의 길', '물의 길', '꽃의 길' 등 세 가지 테마로 조성된 삼색길을 따라 각기 다른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음성의 대표 휴양지다. '산의 길'은 충북자연환경 100선에 선정된 봉학골산림욕장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약 20만㎡ 규모의 산림욕장에는 조각공원과 자연학습장, 맨발 숲길이 마련돼 있으며, 새로 조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 극한 폭염 속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한 선로관리 극한 폭염 속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한 선로관리

  • ‘폭염으로 단축 영업합니다’ ‘폭염으로 단축 영업합니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