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성장 - '스파이더맨: 브랜 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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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성장 - '스파이더맨: 브랜 뉴 데이'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6-08-05 17:07
  • 신문게재 2026-08-06 18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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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브랜 뉴 데이' 포스터.
그는 왜 영웅인데 정체성 고민에 휩싸일까요? 같은 어벤저스의 멤버인데 나머지 히어로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다른 존재들과 같지 않을까? 평범한 사람들과는 어떻게 다르고, 나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 스파이더맨이자 피터 파커인 주인공은 이런 질문들 속에 있습니다.

대도시 뉴욕에서 이런저런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능숙하고, 재능도 있으며 매력도 넘치건만 그는 청소년입니다. 그에게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어벤저스 멤버들은 각기 다른 재능과 힘을 지니기에 각자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있습니다. 물론 스파이더맨도 거미줄을 이용해 이동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므로 도시의 빌딩 숲이 울립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성장 중입니다. 다른 성인 영웅들이 이미 끝낸 고민을 그는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제 그는 청소년기를 완전히 끝내고 막 어른이 되려는 순간에 서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억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기억의 문제를 다루면서 주인공을 기억 상실증 환자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기억 속에서 그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기억 상실도 심각하지만, 사람들 속에 아무런 존재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문제적입니다. 친했던 친구도, 사랑했던 사람도 그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차원이 단지 자기 자신에 국한되지 않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즉 사람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의미를 확보하고 삶의 근거를 확인합니다.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가 많은 가운데 이 영화는 유독 두 사람 간의 대화 장면이 중요합니다. 피터 파커와 프랭크, 또 MJ, 진 그레이, 네드 등과의 특별한 투 숏은 영웅으로서의 문제 해결과 액션을 평범하고 일상적이게 만듭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는 범죄 차량을 잡아내는 일은 어쩌면 그에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무겁고 심각합니다. 존재의 의미와 삶의 이유가 거기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피터 파커가 이들 특별한 이웃들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진정한 정체성 확인과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정체성의 고민은 빌런으로 등장하는 진 그레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인 그녀에게는 빙의의 능력이 있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공격 성향을 다른 사람을 통해 표출하지만 그녀 역시 진정한 만족이 없습니다. 스파이더맨이 되어 놀라운 액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피터 파커가 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듯이 그녀 역시 깊은 우울과 아픔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피터 파커와 진 그레이가 동병상련의 정서로 대화하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큰어머니의 죽음과 언니의 죽음은 그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사랑하는 존재들의 희생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고 삶의 다음 단계인 성인으로 진입합니다. 큰어머니와 언니는 그들에게 통과제의의 희생 제물과도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피터 파커와 관련해 시간이 중요합니다. 기억도 시간의 문제이고, 성장 역시 다음 단계의 시간으로 진입하는 것인 까닭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이 심각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 아니라 피터 파커 자신의 것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고 나올 때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할 수 있음을 영화는 잘 드러냅니다. 영화가 놀라운 점은 이 복잡하고 섬세한 소재를 기존의 스토리, 장르적 특징들과 조화롭게 구성했다는 데 있습니다.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큼 훌륭한 작품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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