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주름(皺)은 삶의 이야기를 담은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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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주름(皺)은 삶의 이야기를 담은 메타포

김충일 북-칼럼리스트

  • 승인 2026-08-04 17:50
  • 신문게재 2026-08-05 18면
  • 이혜린 기자이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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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 북-칼럼리스트
구름을 불러 모을 수는 있으나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듯이 세월의 주름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장맛비를 뒤로하고 일상이 되어버린 폭염과 열대성 소나기, 이제는 극한 더위를 대비해야 하는 8월의 초엽이다. 지난주 8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 나갔다가 은퇴 후, 세계 일주를 하며 노후를 맞아 고향 땅을 찾아온 고졸 동기와 같은 반 친구 몇이 만난다.

마침, 고국을 찾은 친구 추억의 입맛을 되살려주자는 뜻에서 예약된 한정식집. 인공지능 시대를 미리 예견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주름잡던 전문가가 은퇴 후 기술고문으로 손자 용돈(?)을 마련하고 있다는 희원이, 내과의로서 청진의 능력에 '비수술 주름 제거술'이란 피부 검진 성형 외과의로서 늦게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는 용안이가 분위기를 주름잡으며 찾아든다.

이어서 '권력의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란 위험한 게임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뒷방 마님으로 생기는 것 없이 바쁜 철권이, 학교 산악부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 주름이 산주름과 이인삼각 조화인양 건각을 뽐내는 '라이프 디자이너' 필승이, 그리고 항상 멋진 주름치마를 단아하게 다림질해 입는 음식점 사장님의 눈초리에 생기는 보송한 어미(魚尾)가 식사 자리를 감싸 안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과 태도에서 온갖 빛깔의 세월 주름을 만난다. 바로, 내 마음의 거울에 내 얼굴의 주름이 출현하여 다양한 냄새와 확연히 다른 말맛을 풍기기 시작한다. 삶의 고단함일까, 삶의 아련함일까, 삶의 성숙함일까. 아마 그중 하나 아니면 겹치기, 그럴 게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고유한 주름을 만들어 내니까.

마치 쓰러지면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내는 도미노처럼 주름이라는 다층적인 의미 덩어리는 "세상은 딱 떨어지는 게 아니야. 접히고, 꼬이고, 겹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피어나는 거지." 하여, 눈물의 폭포와 햇살 넘치는 세상의 무게를 겪어낸 희생의 주름으로, 상처와 성공의 흔적으로 남아 고통의 무게를 지탱하는 단련된 주름으로, 사랑으로 넘치고, 생명이 솟아나는 삶의 고랑에 숨은 부지런한 일꾼 같은 주름으로 그리하여 이제는 성숙한 인격의 표시로 남겨져 삶의 맥동(脈動)하는 주름으로 거듭 태어난다.

이렇듯 삶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신체의 변화가 아닌 수많은 굴곡과 모순, 얽히고설킨 주름들로 가득하다. 일상의 삶이 지어내는 주름은 삶의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월의 훈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의 주름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해 주며, 우리의 곁이나 멀리 있어도 의미로 가득 찬 침묵으로 울음 울어 주기도 한다. 게다가 어제 심은 씨앗에 물을 줘야 오늘을 지나면 결실을 보게 된다는 앞으로의 여정의 방향을 일깨워주는 까다로운 '삶의 지도책'이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깊이 느끼고, 온전히 사랑하며, 의미 있는 관계를 쌓고, 기쁨과 연결을 경험하며 평생을 보낸다. 그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만난 주름은 시간의 흐름, 경험의 축적, 그리고 인생의 여정이 맺어진 흔적이다. 주름은 자신을 스스로 숨기지 않았다는 물리적 증거이다. 주름은 비교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면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세월의 깊이로 얼굴에 재구성된다. 이제 함께했던 말벗은 "난, 주름을 믿어요. 인생을 뒤흔들었어요.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주름을 쌓고 싶어요."라는 성숙함과 현명함의 의미망이 되어 한정식집의 메뉴판 카피로 선정된다.

그렇다! 주름은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하나의 메타포다. 그동안 살아온 파도와 같은 세파와 거칠게 만져진 아름다운 심인(心印)으로 그린 '삶의 생명화(生命畵)'이다. 이아침, 여기 살아있다는 삶의 잔무늬를 지우진 말자. 하여 깊이 잘 살아온 우리에게 찾아오는 선물인 주름에 감사의 인사를 건네 보자./김충일 북-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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