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지폐와 동전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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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지폐와 동전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최정민 미술평론가

  • 승인 2026-07-22 16:54
  • 신문게재 2026-07-23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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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미술평론가
지갑 속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손에 쥐어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잔돈을 받아도 다시 지갑에 넣기보다 이웃돕기 저금통에 던져 넣기 일쑤다. 지갑보다 휴대전화 화면 속에서 돈을 더 자주 만나는 시대가 되었다. 커피나 물건을 살 때도 현금보다 카드나 모바일 결제가 먼저 사용된다. 화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그 모습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가장 오래된 거래 방식은 물물교환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물건을 다른 사람의 물건과 바꾸는 방식이다. 농사를 지은 사람은 곡식을, 사냥을 한 사람은 고기를 내놓으며 필요한 것을 구했다. 하지만 물물교환은 서로 원하는 물건이 맞아야만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물건마다 가치도 달라 기준을 정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일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물건을 거래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조개껍데기와 곡식, 소금, 금속 등이 그 역할을 했다. 중요한 것은 조개껍데기나 금속이라는 재료가 거래의 기준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비로소 화폐로 인정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폐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고려는 철전과 은병 등을 발행하며 화폐 유통을 시도했지만 널리 정착하지는 못했고, 곡식과 베를 이용한 거래가 여전히 일반적이었다. 조선은 태종 때 종이 화폐인 저화(楮貨)의 유통을 적극 추진했지만 오래 정착하지는 못했다. 백성들은 여전히 곡식과 베를 더 익숙한 거래 수단으로 여겼다. 국가가 화폐를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정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화폐를 정착시키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세종은 조선통보(朝鮮通寶)를 주조했지만 기존 거래 관행과 구리 부족 등 여러 이유로 널리 정착하지는 못했다.

조선시대 화폐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숙종 4년인 1678년, 상평통보의 전국적 보급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상평통보는 오늘날에도 당시의 경제와 문화를 전하는 유물로 남아 있다. 둥근 형태에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낸 구조는 동아시아 화폐의 전통을 보여주며, 앞면에 새겨진 '상평통보' 네 글자는 시기와 주전소에 따라 획의 굵기와 자간이 조금씩 다르다. 같은 이름의 동전 한 닢에도 만든 곳과 시대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셈이다.

조선 후기, 장시(場市)가 확대되고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상평통보는 일상적인 거래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상평통보는 전국적인 유통 체계를 갖추며 조선의 대표 화폐로 자리 잡았고, 서양의 근대 화폐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약 200년 동안 사용되었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의 화폐는 지폐와 근대식 주화로 변화했고, 오늘날에는 모바일 페이처럼 휴대전화 하나로 결제가 끝나는 시대가 됐다. 서울이나 대전 시내에서는 현금 없이 운행하는 버스도 볼 수 있다. 지갑 없이도 교통비를 내고 물건을 사고 계좌이체와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다가온 것은 아니다. 화면 속 앱을 열고 지문이나 안면인식을 거쳐야 하는 결제 방식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장벽이 된다. 현금 없는 버스나 무인 매장 앞에서 결제 방법을 몰라 발걸음을 돌리는 노년층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상평통보 역시 전국에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새 화폐보다 곡식과 베를 더 익숙한 거래 수단으로 여긴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흔적은 남지 않았지만, 화폐가 바뀔 때마다 편리함과 함께 소외도 함께 옮겨 다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조개껍데기에서 시작된 화폐가 금속과 종이를 거쳐 지폐와 동전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아직도 현금을 들고 다녀야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함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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