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아이들에게 물려준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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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내일] 아이들에게 물려준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시대’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 승인 2026-07-19 16:42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김규용
김규용 교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역사를 기억하는 대신 스스로를 비하하기 시작했을까.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우리 역사의 비극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일부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아픔이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청소년들의 일탈이 아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비하하고 조롱해도 되는 위험한 유산,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시대'를 물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비하하고 조롱하는 역사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역사를 교과서보다 사회에서 먼저 배운다. 사회는 아이들의 또 다른 교실이다. 그들이 매일 접하는 정치와 미디어, 온라인 공간과 어른들의 언어가 아이들의 역사관과 시민의식을 만들어 간다.

오늘날 역사적 사건은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성찰해야 할 대상임에도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 역사의 상처는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되고, 정치권과 일부 미디어는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논란을 증폭시키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아이들은 공론의 장에서 먼저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역사를 조롱하는 사회는 결국 부끄러움을 잃은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사회적 리더십과 시민의식의 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지금은 민주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적 시점이다. 사회적 지도자의 리더십이 건전하게 발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견고한 토양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잃은 지도자가 혐오를 조장하고 시민이 조롱에 동조하는 악순환 속에서, 다음 세대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조롱에 익숙해진 사회를 방치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민주주의의 미래는 토양을 잃은 나무처럼 말라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시민의 습관 위에서 유지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시민의식이 민주주의의 토양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품격이 흔들리는 데 있다.

▲정치가 갈등을 만들고 알고리즘은 혐오와 편견을 증폭시킨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일상을 바꾸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AI는 정보를 빠르게 정리하지만 가치관까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AI는 사람을 혐오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혐오와 편견을 누구보다 빠르게 확산시키는 증폭장치가 될 수 있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많이 노출시키고, 분노와 갈등은 클릭을 통해 더욱 확대된다. 역사적 비극도 어느새 숏폼 콘텐츠와 밈(Meme),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지만, 알고리즘을 움직이는 사회의 문화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스스로 성찰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

교육도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대학과 더 높은 경쟁력을 위한 방법은 가르쳤지만, 함께 살아가는 법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법은 충분히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AI를 활용하는 능력은 강조하면서도 AI가 대신할 수 없는 공감과 성찰, 책임은 교육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도 시험문제를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잊어가고 있다. 교육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인문학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학문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장치이다.

▲부끄러움을 잃은 사회는 미래를 잃는다

우리 사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가치는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인간다움의 출발점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배우기 전에 우리의 태도를 배운다. 우리가 혐오를 소비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놀이로 배우고, 우리가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소비하면 아이들은 역사를 가벼운 콘텐츠로 인식하게 된다. 아이들이 역사를 조롱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실패 이전에 어른들의 사회가 남긴 거울인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AI라는 뛰어난 기술을 물려주고 있지만, 정작 함께 물려주어야 할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는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뛰어난 기술을 남길 수는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잃은 사회를 함께 물려준다면, 그 기술은 공동체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가장 큰 유산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고 타인의 아픔 앞에서 함께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다움이다.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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