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반도체 슈퍼을 ASML, 변방에서 고객 찾아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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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반도체 슈퍼을 ASML, 변방에서 고객 찾아 출발하다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 승인 2026-07-19 12:40
  • 신문게재 2026-07-20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최종인 한밭대 융합경영학과 교수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반도체 초격차 회사' ASML의 전설적인 리더, 마틴과 피터 두 사람이 은퇴(2025)를 앞둔 시점에 진행된 인터뷰는 큰 시사점을 준다. "필립스는 우리를 마당 울타리 안의 개 취급했어요. 가끔 뼈다귀를 하나 던져주는 정도였죠. 처음에는 비전도, 역량도 없었고, 있었던 건 오직 꿈뿐이었고, 우리는 그 꿈을 실현해 줄 파트너들을 찾아 나섰죠." 마틴 판덴브링크는 회사 탄생 초기부터 참여한 인물로, ASML의 기술적 두뇌이자 방향을 제시했고, 피터 벤닝크는 뒤늦게 합류해 '숫자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조직과 전략의 설계자로 성장했다. 특히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인상적이다. 마틴은 "지독할 만큼(relentless) 집요하게 사물의 본질을 찾는 사람"이고, 피터는 "시야가 넓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이 가장 큰 강점"이라는 상호 평가가 나온다.

7월초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옆, 벨트호번의 ASML 본사를 방문해 구내식당에서 점심과 전시관을 둘러보며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고객이 최우선 가치"라는 말이다. 늘 해오고 듣던 이야기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스토리일까?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만의 중요한 고객사 대표가 전화로 장비에 아주 큰 기술적 문제를 제기하자 두 CEO는 바로 직접 갈 것을 결정했다. 그런데 마침 그 시기는 네덜란드 총리와 타국 총리가 ASML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때와 겹쳤다. 그럼에도 두 CEO는 고객을 우선했고, 직접 대만 고객사로 향했다. '고객의 이익을 항상 먼저 둔다'는 조직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고, 이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판단기준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어떠했을까? 또 조직론을 공부한 사람으로 궁금한 것은 두 사람이 11년 동안 ASML의 공동대표를 맡아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 라슨이 그린 '배 그림'을 보면 항해 중인 배에 두 명의 선장과 노 젖는 사공들이 양편에 앉아있다. 그 밑 설명에 '이 배가 어디로 갈까? 아마 원을 그리며 맴돌 것이다'. 이 만화는 공동 리더십과 구성원 의사소통이 어긋나면 조직이 제자리걸음을 함을 풍자한다. 그러나 ASML에서는 제품과 기술을 마틴이, 나머지 경영·조직·전략을 피터가 맡는다는 분명한 역할 구분이 있었고, 잘 작동하면서 '음과 양'의 콤비가 되었다. EUV 장비를 두고 "한 기계에 150억 유로가 들어갔다"고 표현할 정도로, 누적된 연구개발·공급망·협업 투자 규모가 막대한 기술이다. 또 리스크가 큰 미국 레이저 제조업체 사이머(Cymer) 인수 때도, 독일 파트너인 렌즈 제조사 자이스(Zeiss) SMT의 지분 25%를 취득도 한 팀이 되어 결정했다.

무엇보다 이 회사의 핵심 역량은 복잡한 시스템 통합이다. 수천 개의 공급업체를 잘 관리해 멋진 생태계를 만든 것이 초기에 겪었던 '가난과 방치(poverty and neglect)'의 산물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초기 ASML은 비주류·변방 조직에 가까워 모든 걸 내부에서 다 할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외부 파트너(공급업체·연구소·대학·고객사)를 적극적으로 찾으며 공동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생태계형 모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약 조건 속에서 부품의 80% 이상을 외부에서 아웃소싱하고, 렌즈는 자이스, 레이저는 사이머 등 핵심 부품을 단일·장기 파트너에 맡겼다. 또 공급업체 R&D에 직접 투자하고 마진·리스크를 명확히 공유하면서, 수천 개 협력사의 품질·물류·기술·비용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한편 유럽 정책의 한계도 엿볼 수 있다. 복잡하고 느린 규제체계, 일관성과 속도가 부족한 산업전략, 미국·중국 사이에서 자율성이 부족한 대외·수출 정책, 기업·인재·투자 환경의 구조적 제약 등이 그것이다. 셸(Shell)과 유니레버 등 대형 기업이 자국을 떠난 상황에서도 정치가 여전히 안일하다고 비판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규제, 의사결정 속도, 인재, 주거, 국제화"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경쟁우위의 핵심일 것이다. 결국 공급망, 파트너, 대학, 연구소, 정책, 자본, 인재, 인프라까지 포함한 긴 호흡의 투자·협력 구조를 잘 설계하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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