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박용래를 기억하는 대전의 씁쓸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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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박용래를 기억하는 대전의 씁쓸한 방식

② 주차장이 된 박용래 집터…오룡역 병기만 남은 기억의 과제
지역 문단의 사랑방이던 청시사, 2008년 철거 후 주차장 신세
집터 복원·개인문학관·역명 병기 요구에도 행정 논의는 더뎌

  • 승인 2026-07-15 16:48
  • 신문게재 2026-07-16 2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대전의 문학적 자산인 문인들의 생가와 묘역이 행정적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으며, 박용래 시인의 '청시사'와 정훈 시인의 고택 등 상징적 장소들이 잇따라 철거되며 보존 체계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역 문단은 실질적인 보존을 위해 사라진 집터의 복원이나 인근 지하철역 명칭 병기 등 문학 유산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구체적인 선양 사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 공간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강조하며, 지역의 역사적 흔적을 되살리기 위한 체계적인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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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오류동에 위치한 박용래 시인 집터(청시사)가 현재 공영주차장이 됐다./사진=최화진 기자
도시의 기억은 결국 사람과 장소에 남는다. 대전에도 지역 문학사의 흐름을 이어온 문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정작 그 자취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채 멀어지고 있다. 묘역은 찾기 어렵고, 생가는 사라졌으며, 지역의 문학적 자산을 기리려는 노력은 행정의 체계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기획을 통해 대전 문학유산 보존의 현주소와 지역 문화 행정의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르포] 산길 끝 김호연재 묘역, 문학관 논의도 길 잃었다

② 주차장이 된 박용래 집터…오룡역 병기만 남은 기억의 과제

③ 충청 연고 문인도 낯선 대전, 문학유산 관리 체계 빈틈

④ 사라진 뒤엔 늦는다…대전 문학유산 이제는 체계 세워야



지역 문인들에게 청시사(靑枾舍)는 단순한 집터 그 이상의 의미였다.

문 앞에 감나무가 있어 '푸른 감나무 집'이라는 뜻의 청시사는 박용래 시인이 대전 중구 오류동에서 20여 년간 머물던 집터였다. 동시에 지역 문인들이 드나들며 시와 사람, 술과 이야기를 나누던 대전 문단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박용래와 가까웠던 문인들의 글에도 청시사는 자주 등장한다. 시인의 집을 찾아 술잔을 나누고, 울고 웃던 기억들이 남아 있다. 청시사는 한 개인의 집을 넘어 대전 문학사의 한 장면이 쌓인 장소였던 셈이다.

박용래의 작품 속에서도 대전의 풍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동나무 길, 운동장, 축제의 열기, 가난한 이들의 어깨와 울음 같은 장면들이 그의 시에 남아 있다. 작고 낮은 것들을 섬세한 언어로 길어 올린 박용래의 시 세계는 그가 살았던 동네의 풍경과도 맞닿아 있었다.

박용래 시인이 세상을 떠난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역 문인들은 '울보 시인', '가위 눈물의 시인'이라 칭하며 여전히 그를, 그의 시어를 기리고 있다. 지역 문단에게 박용래 시인은 자존심이자 청시사는 대전 문학의 상징적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청시사는 남아 있지 않다. 2008년 집터가 철거된 뒤 공영주차장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위치안내판과 표지석, 벽화만 남아 이곳이 박용래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리고 있다.

지역 문학계가 박용래의 집터 문제를 아프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청시사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전에서 문인의 흔적이 제때 보존되지 못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대전은 2016년 충청의 대표 향토시인 정훈 시인의 고택이 철거된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 지역 10개 문학단체가 고택 사수를 위해 철거 반대 서명운동과 간담회 등을 추진했지만 문인들의 노력은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됐고 고택은 끝내 철거됐다. 박용래 집터가 철거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충청의 대표 향토시인이자 지역 문학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던 정훈 시인의 흔적도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문인의 흔적이 사라질 때마다 뒤늦게 아쉬워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지역 문인들이 느끼는 회의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인을 도시의 자산으로 말하면서도 정작 그 흔적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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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오류동 박용래 시인 집터에 마련된 표지석./사진=최화진 기자
박용래 집터의 후속 활용 방안을 두고 지역 문단의 의견은 아직 분분하다. 다만 현재 집터 부지가 중구 소유라는 점은 그나마 희망으로 남아 있다. 시나 구가 의지를 보인다면 집터를 활용한 선양사업을 추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문인들은 현재 부지에 청시사를 재현해 지역 문단의 상징적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는 해당 부지를 중심으로 인근까지 매입해 박용래 개인문학관을 조성하는 방안도 거론한다.

오룡역에 '박용래역'을 병기하자는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역명은 단순한 교통 표지가 아니라 도시가 어떤 인물과 이야기를 기억할지 보여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춘천 '김유정역', 안산 '상록수역', 서울 '낙성대(강감찬)역'처럼 지역의 인물과 문학을 시민 생활 속에 남긴 사례도 있다.

지역 문학계는 청시사 터가 오룡역 인근에 있는 만큼 오룡역 병기가 박용래를 시민에게 알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오룡역을 문학 특화 역사로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며 병기 논의도 중장기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후 도로교통공사와 대전문화재단이 협업해 오룡역에 작은문학관을 조성하고 박용래 시인을 기리는 전시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 12월을 끝으로 종료될 예정이고, 정작 핵심 요구였던 '박용래역' 병기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이에 지역 문단에서는 문인의 흔적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대전 문학유산을 보존하고 시민에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충남대 국어교육과 박수연 교수는 "대전은 오래된 문화유산이 많지 않은 도시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남겨둔 곳이 많지 않다"며 "청시사 터 같은 문학적 장소라도 주민들의 공간으로 돌려주는 것이 역사적 흔적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인문학진흥법' 취지를 보더라도 지자체는 주민들의 정신적·문화적 삶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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