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의 시조 풍경-20] 대야리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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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오의 시조 풍경-20] 대야리 해나무*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 승인 2026-06-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당진 대야리의 천년 된 회화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조상과 후손을 잇는 신성한 상징으로서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전통적 가치가 희미해지는 현실 속에서, 마을의 고령화와 함께 노쇠해가는 거목의 모습에 깊은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진정한 마을의 주인은 물질적 점유가 아닌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는 자임을 강조하며, 사라져가는 고향의 영적 지주인 신목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 고향 대야리

우물곁에 회화나무

천둥·번개 다 삼키고 용트림한 벅찬 가슴

부챗살 활짝 편 가지 덩그렇게 웃는다



천년을 보아오신

신목(神木)의 기억 속에

고려 때부터 오늘까지 사랑하다 가신 선조

얼굴이 차곡차곡 담겨 새 잎으로 피어난다



지나온 천년 위에

내다보는 천년까지

정화수 한 우물에서 생생하게 살으오니

내 얼굴 곱게 안고서 기도하는 임이어라.



*당진시 순성면 대야리(大也里) 천년보호수 회화나무가 있는데 새날의 첫 햇살 머리에 닿아 '해나무'라 불린다.



<시작 노트>

오랜 마을에는 수호신이 있다. 조상대대로 모셔왔고, 자손만대까지 보살펴 줄 수호신이 있다. 그것은 큰 나무이거나, 우람한 바위이거나, 산이거나 강이거나 장승이거나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온 역사적인 상징물이다. 경외의 대상이 되는 수호신은 생각하기에 따라 소중한 존재이다. 오만한 생각이나 방자한 말투로 제멋대로 단정짓는 인간은 그 자신이 어느 순간 가장 약한 모습으로 죽어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저지르는 잘못을 다 알지 못한다. 생명의 원천이 신비롭고 숭엄함을 소홀히 생각할 수 있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신앙이 이어지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자연사랑이 이어진다. 인간집단의 의식을 이끌어가는 길이 사랑과 신앙의 대상이 된다. 조상을 알고 후손을 점지해줄 자연물을 소홀히 여기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고향마을에는 천년묵은 회화나무가 마을 공동우물 곁에 서있다. 아버지는 종종 "저 나무가 무성하게 서있으면 마을에 길운이 깃들고, 저 나무가 병들고 쇠약해지면 마을에 불운이 오는 증조이다"라고 말씀해 오셨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참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공동우물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생명력을 읽어간다. 단지 물만 먹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덩그런 회화나무는 날로 노쇠해 가는 모습을 부인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들뿐이어서 언제 마을이 없어질지 모르는 처지가 되어간다. 누군가 와서 마을을 차지할지라도 그 사랑과 신앙이 사라지면 물질적인 점령자는 될 지라도 진정한 마을의 주인은 될 수 없다. 원주민 마을의 추장과도 같은 천년거목(千年巨木) 만년 신목(萬年神木)의 앞날이 불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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