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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선 연세유치원 교사 |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보냈던 현장에서 벗어나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에 관한 깊이 있는 수업을 듣고 자유로운 사유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4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내가 유아와 놀이, 배움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아이들의 놀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미성숙한 유아', '성숙한 교사'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끊임없이 내가 정해둔 배움의 길로 이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아이들의 배움은 결국 정해진 도달점, 즉 성인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놀이에는 한 가지 배움만 존재하는가? 놀이는 그저 초등학교에 가기 전 혹은 성인이 되기 위한 발달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대학원에서 마주한 새로운 철학적 사유들은 오랜 시간 유아교육을 지배해왔던 발달주의 패러다임에 커다란 흠을 만들어주었다. 포스트 휴머니즘과 신유물론, 차이생성의 철학을 접하며 나는 인간 중심적이고 선형적인 발달의 틀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미래의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 선형적으로 발달단계를 따라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또한 교사의 가르침 속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듯 유아는 놀이하며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는 물질들과 얽혀 끊임없이 무언가가 '되어가는(becoming)' 존재였으며, 성인의 잣대로 편집되고 삭제될 수 없는 무수하고 역동적인 배움들이 놀이 속에 숨 쉬고 있었다.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었던 놀이의 모습은, 사실 놀이의 본질이 아니라 성인들이 자신의 편리와 기준에 맞춰 놀이를 명명하고 구획하여 편집한 결과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로지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놀이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유아라는 존재와 놀이를 새롭게 바라보니 과거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반짝임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불현듯, 그리고 강렬하게 떠올랐다. 당시에는 교육적으로 가치가 없거나 그저 산만하다고 치부하며 지나쳤던 아이들의 사소한 몸짓, 반복적인 형태의 놀이, 갑자기 전환되는 놀이 사건들이 모두 그 자체로 충만한 배움의 순간들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놀이를 이해하는 첫 번째 발걸음은 유아의 놀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깨달음은 나에게 커다란 해방감과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사유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충만함을 온전히 믿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온몸으로 세계와 만나며 변화해가고 있는 아이들의 경험을 읽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말이라는 성인의 잣대에 갇히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들의 진짜 세계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지도'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충만한 놀이에 '함께 존재하고 또 함께 항해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송진선 연세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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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