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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
그 하나의 선택지가 여행이다. 국토 여행을 갈까. 아니면 그 외연을 넓혀서 해외로 여행을 떠날까하는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선택이 어떠한 것이든 여행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적극 권장할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도 휴식의 목적에서이든 다른 형이상학적인 목적에 의해서든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그 여정의 과정을 일기라든가 기행문의 형식으로 남겼다. 과거 한때엔 무전여행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말 그대로 돈 한푼 쓰지 않으면서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는 하루 정도 재워주는 인심, 한끼 정도의 식사를 조건없이 주는 넉넉함이 있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여행 형태였다.
여행은 흔히 놀러가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여행은 그 과정을 통해서 여행자에게 분명한 지식과 본받을 만한 교훈을 얻게 해준다. 여행이 주는 이런 효과 때문인지 그것은 많은 시도 동기를 제공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여행이 크게 유행한 적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가 대표적이다. 물론 여행이란 어느 한 시기에만 이뤄지는 고유한 형식은 아니다. 그것은 항상적인 것이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지금처럼 수천만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데, 이런 대규모의 여행을 두고 지금만의 고유한 유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여행이란 어느 한 순간의 유행이나 멋이 아니라 생활 속에 자리잡은, 삶의 한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돼 있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에 많은 문인들이 여행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필과 시를 쓰는 등 저마다의 여행기를 남겼다. 이때 이들이 시도한 대부분의 여행은 국토 곳곳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이 시기 이런 여행을 시도한 대표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육당 최남선일 것이다. 그는 '백두산 근참기', '심춘 순례' 등을 썼는데, 제목에서 시사되듯 그의 여행은 대부분이 국토에 대한 사랑에 주어졌다. 따라서 그에게 국토여행이란 근엄한 참배였고, 성스러운 순례와 같은 것이었다. 그가 이 여행을 이렇게 신성시한 데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이유가 있었다. 국권 상실이라는 혼(魂)을 잃은 서러움을, 육(肉)이라는 국토의 확인을 통해서 달래고자 했기 때문이다. 육당에게 국토는 영적 혼이 담겨있는 애니미즘(animism)과 같은 것이었다.
육당의 국토 기행이 사실적인 것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면, 이와 반대되는 여행을 시도한 시인도 있었다. 청록파를 대표하는 시인인 목월의 경우가 그러하다. 목월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을 회피했고, 가공의 현실에 바탕을 둔 여행만을 꿈꿨다. 그는 이 시기 다른 사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토 여행을 통해서 애국주의라든가 민족주의에 심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선의 강토는 일제의 말발굽에 아래 놓여 있었고, 그렇기에 거기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를 대신할 이상의 공간이자 허구의 공간을 만들고 그속에 기대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청노루'와 '자하산'과 같은 허구의 세계다. '청노루'와 '자하산'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거니와 그저 시인의 마음 속에서만 자리한 자연일 뿐이다. 목월은 이 가상의 자연으로 떠남으로써 일제의 말발굽에 놓여 있는 현실을 비껴가고자 했다.
국토를 여행하면서 그것이 주는 신성함과 애국심을 가슴 깊이 간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대라는 형이상학적 관념을 비판한 사람도 있다. 정지용이 그러한데, 그는 한라산의 정상에 오르면서 근대의 이원론에 바탕을 둔 위계질서를 뛰어넘고자 했다.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는 세상, 야생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구분되지 않는 세계를 꿈꾸면서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자연의 일부임을 확인한 것이다. 여행은 이렇듯 휴식이라는 차원을 넘어 여러 교훈적인 것을 가져다 준다. 무관심이 넘쳐나는 이 시대와 점점 엷어지는 애국심, 그리고 진정성있는 자아를 찾기 위해 상쾌한 여행을 떠나보는 어떨까.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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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