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 산책](19)제후국 프레임에 갇힌 『대군부인』, 『환단고기』가 묻는 잃어버린 역사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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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 산책](19)제후국 프레임에 갇힌 『대군부인』, 『환단고기』가 묻는 잃어버린 역사 주권

박찬화 (사)대한사랑 사무총장

  • 승인 2026-05-25 11: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21세기 K-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세계에 전달하는 강력한 문화 권력이 되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세계인의 역사 인식과 문화 감수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오늘날 콘텐츠 속 상징 하나, 의복 하나, 용어 하나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메시지가 된다.

최근 논란이 된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문제는 단순한 고증 오류 수준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스스로 내세운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이라는 설정조차 부정한 채, 대한민국을 마치 중국 질서 아래의 제후국처럼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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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군부인 드라마 11회에서 신하들이 천세,천천세를 외치는 장면 <TV 화면 캡쳐>
대표적인 장면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한민국 군주가 황제의 상징인 '십이면류관'이 아니라 제후국 군주에게 사용되던 '구류면류관'을 착용하고 1회부터 등장했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신하들 역시 우리가 익히 들어보았던 "만세(萬歲)" 대신 제후국 군주에게 사용하던 "천세(千歲)"를 외쳤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동아시아 정치문화에서 면류관의 숫자와 군주를 부르는 호칭은 단순한 장식이나 대사가 아니다. 그것은 곧 국가의 위계와 세계관, 그리고 국제질서 속 위치를 드러내는 상징 체계였다. 황제국과 제후국은 엄연히 다른 질서였으며, 그 차이는 의복과 의례, 언어 속에 세밀하게 반영되었다.

그렇기에 오늘날 콘텐츠에서 군주에게 '천세'를 외치고, 제후국 체계의 상징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연출은 단순한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록 픽션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표현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징 체계를 무의식적으로 중국 중심 질서의 '속국 프레임' 안에 가두는 기호학적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극 중 대비가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한국 전통 다례를 배제한 채, 중국식 다도 방식을 그대로 노출해 시청자들의 비판을 불러왔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 궁궐에 방화를 여러차례 가하는 자극적 설정, 한복을 거부하는 인물을 '주체적 선택'처럼 묘사하는 장면들 역시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연출은 의도 여부를 떠나 중국의 문화 침탈 논리에 스스로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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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1세기 대군 부인 2회에서 사신도 그림을 대상으로 과녁을 맞추는 장면 <TV 화면 캡쳐>
특히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장면은 2회에서 나온 고구려 문화로 대표되는 사신도(四神圖)의 청룡·백호·주작·현무를 활쏘기 과녁으로 사용한 연출이었다. 활쏘는 과녁에 사신도를 그려놓은 건 역사왜곡을 넘어 역사 혐오나 저격에 가깝다. 사신도는 단순한 장식 벽화가 아니다. 그것은 동서남북의 우주 질서를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이자, 고구려인의 우주관과 정신세계가 응축된 상징 체계다. 고구려와 백제의 고분벽화에 찬란하게 새겨진 사신은 천자의 나라를 수호하는 광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게다가 사신도(四神圖)는 조선 왕실의 상징 체계 속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경복궁의 동서남북 사대문 천장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으며,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에도 각 방위를 상징하는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새겨져 왕의 공간을 수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신도를 활쏘기 과녁으로 사용한 연출은, 왕실과 국가를 지키는 신성한 상징을 화살의 표적으로 소비한 기이하고 괴이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신도를 '쏘아 맞히는 표적'으로 소비한 연출은 단순한 고증 오류나 우연한 장면 연출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궁극적으로 고구려 문화를 제거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며, 더 나아가 한민족 신교 문화의 뿌리와 고대 정신문화를 희화화하고 훼손했다는 강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사신도 논란과 같은 문제 제기가 언론과 문화계에서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역사와 문화 주권의 문제에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다.

특히 K-콘텐츠가 세계적 영향력을 갖게 된 오늘날에는, 역사와 전통의 상징을 다루는 제작진의 역사 인식과 문화적 책임감 역시 그 영향력에 걸맞은 수준으로 더욱 신중하고 무거워져야 한다.

이러한 장면과 연출이 반복되자 많은 시청자들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역사 인식과 문화 코드가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와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장면들이 계속 등장한 것일까. 단순한 고증 부족과 역사 인식의 결핍에서 비롯된 우연한 실수였을까, 아니면 특정한 역사관과 문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든 의도적으로든 반영된 결과물이었을까.

물론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만으로 특정 외국 자본이 드라마의 세부 내용이나 연출 방향에 직접 개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21세기 대군부인」은 MBC 드라마본부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공동 제작 작품이며, 이른바 '한중 합작 드라마'로 공식 발표된 작품도 아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진 배경에는 분명한 구조적 현실이 존재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주요 투자자 가운데 중국의 거대 IT 기업 텐센트가 일정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이러한 글로벌 자본 구조가 콘텐츠의 문화적 방향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단지 드라마 한 편의 고증 논란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회 내부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역사 축소 프레임에 대한 집단적 반발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한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이라 배워왔지만, 실제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대폭 축소해 단군을 허구의 인물로 몰고 단군기원 즉 단기를 부정하며 우리 역사를 많아야 2700년 정도 된 역사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이어져 왔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중국의 속국론과 직접 연결되는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 한반도설,낙랑군 평양설 등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중국의 영향권 안에 가두려는 해석을 통설이라며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역사 인식은 스스로 축소된 채, 수천 년 문명사의 주체가 아니라 주변부 역사에 머무르는 구조 속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사신도의 청룡·백호·주작·현무를 활쏘기 과녁으로 사용하여 사신을 맞추어 죽이는 연출이 등장했음에도, 이를 둘러싼 문제의식이나 비판적 논의가 학계에서 거의 제기되지 않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고구려 역사 인식 수준마저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동북공정의 핵심 대상이 되어온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과연 우리 학계가 이들 국가를 독자적 세계관과 문명 체계를 지닌 황제국으로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를 보자. 실제 1차 사료인 광개토태왕릉비에는 분명히 독자 연호인 "영락(永樂)"이 기록되어 있고 군주의 호칭 또한 "태왕(太王)"으로 새겨져 있다. 독자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연도 표기가 아니라, 스스로 독자적 천하 질서를 지향했다는 국제정치 선언에 가깝다.

그럼에도 일부 역사학계는 여전히 공식 명칭인 "광개토태왕" 대신 "광개토왕"이라는 표현을 선호하고 있다. 물론 학술적 용례나 표기상의 이유를 들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태왕"이 지닌 천자국의 상징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해석이 반복되어 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 질서 속에 위치시키며 독자적 연호와 황제적 체계를 운영했던 국가였다.

이와 관련해 『환단고기』는 고구려 태왕의 연호를 7개나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고구려의 연호로는 제1대 고주몽성제의 다물(多勿)·평락(平樂), 제6대 태조무열제의 융무(隆武), 제20대 장수제의 건흥(建興), 제21대 문자제의 명치(明治), 제25대 평원제의 대덕(大德), 제26대 영양제의 홍무(弘武), 제28대 보장제의 개화(開化) 등이 있다. 이는 고구려가 고주몽성제 이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천자국이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광개토태왕을 이은 장수태왕의 연호인 '건흥(建興)'에 대해서는 이미 중도일보 2026년 3월 2일 자 기고글을 통해 그 실재성이 입증된 바 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건흥' 연호가, 실제로 발굴된 건흥 5년명 금동불상의 제작 연대인 416년 병진년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운 중요한 근거다. 이는 고구려가 독자적인 연호 체계를 운영한 자주적 천자국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환단고기』 기록이 상당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학계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활용하기보다, 오히려 『환단고기』 자체를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구려의 천자국 체제와 독자적 역사 전통을 밝힘으로써 중국의 동북공정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존재함에도, 이를 외면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환단고기』는 발해 역대 군주의 황제 연호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발해가 독자적인 천자 질서와 국가 체계를 운영한 제국이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록은 발해를 단순히 당나라의 지방 정권이나 종속 국가처럼 규정하려는 중국의 이른바 '당발해' 논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발해를 고구려의 정통 계승국이자 자주적 제국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사를 중국 지방사로 편입하려는 역사 왜곡에 강한 반론이 될 수밖에 없다.

대진국(발해)의 연호를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1대 열황제 대중상은 중광(重光), 2대 고황제 대조영은 천통(天統), 3대 무황제 대무예는 인안(仁安), 4대 문황제 대흠무는 대흥(大興), 5대 원의, 6대 성황제 대화흥은 중흥(中興), 7대 강황제 대숭린은 정력(正歷), 8대 정황제 대원유는 영덕(永德), 9대 희황제 대언의는 주작(朱雀), 10대 간황제 대명충은 태시(太始), 11대 선황제 대인수는 건흥(建興), 12대 화황제 대이진은 함화(咸和), 13대 안황제 대건황은 대정(大定), 14대 경황제 대현석은 천복(天福), 15대 애제 대인선은 청태(淸泰)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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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일사 대진국 본기와 신당서의 대진국(발해) 황제 연호 비교표
15명의 군주가 모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발해가 스스로를 황제국으로 인식하고 운영했던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 할 수 있다. 특히 대중상과 대조영 부자가 함께 건국한 발해의 역사에서, 대중상을 초대 군주에서 제외하는 현재의 통설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 학계는 지금도 대중상을 초대 건국자, 건국 군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조영의 연호 문제 역시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대조영의 연호는 천통(天統)이다. 특히 '천통십년명불상(天統十年銘佛像)'의 존재는 대조영이 실제로 천통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거론된다. 대조영의 재위 기간이 21년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천통 10년'이라는 기록은 대진국(발해)의 연호 체계 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환단고기』 기록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학계는 여전히 대조영의 독자 연호 문제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 정권이나 속국처럼 묘사되는 동북공정 논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713년 당 현종이 신하 최흔(崔&#24571;)을 보내 대조영을 '발해군왕 홀한주도독(渤海郡王 忽汗州都督)'으로 책봉했다는 중국 측 기록이다. 중국은 이를 근거로 발해를 당 황제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위를 부여받은 지방 정권처럼 서술해 왔다. 그러나 이미 대조영이 '천통'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는 발해가 당과 별개의 자주적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반론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우리 학계는 발해의 독자 연호 체계와 황제국 의식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 대응과 역사 서술을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처럼 이번 논란은 단순히 조선시대의 제후국 논쟁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단군조선에서 북부여,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과연 속국 의식과 제후국적 역사관을 완전히 극복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국민들이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사태는 특정 드라마의 연출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내재된 역사 인식과 문화 정체성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축소되고 왜곡되어 온 고대사 인식, 그리고 스스로를 주변부 역사로 규정해 온 무의식적 사고에 대해 대중이 강한 문제의식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는 국제 정치와도 연결된다.

2017년 4월,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당시 중국 측 역사 인식의 배경에는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과 같은 오래된 식민사학적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를 420년간 지배했다는 이 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중국의 주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중국은 국내 주류 역사학계의 해석을 근거로 삼아, 한나라의 식민지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400년이 넘는 기간 중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논리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우리 역사학계는 그대로 동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강력하고 정당한 반론은 단재 신채호를 비롯하여 이를 계승한 민족진영 사학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고대 문헌 기록과 지리 정보를 종합할 때, 한나라 군현의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 또는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은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의 식민 지배가 한반도 이땅에서 420여 년간 지속되었다는 식민사관을 여전히 정설처럼 받아들이는 학계가 존재하는 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 역시 근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국 고대사를 중국 지배 질서 안에 위치시키는 해석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역사 침탈만 비판하는 모습은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실제로 사이버외교단체 반크가 중국 한나라의 영토가 한반도까지 침범한 것으로 표기된 해외 세계사 교과서와 지도를 수차례 시정 요청했음에도 제대로 수정되지 않는 현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물론 해외 출판사들의 무지와 중국 중심 사관의 영향도 문제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내부 학계가 이러한 식민사학적 프레임을 스스로 정설처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자국 학계조차 한사군 한반도설과 낙랑군 평양설을 사실상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데, 해외에서 이를 왜곡이라고 인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동북공정의 가장 큰 토대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무기력한 학문 구조 속에도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환단고기가 던지는 문제의식 또한 일정 부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왜 우리는 스스로를 반도라는 틀에만 가두고 있는가?"

동아시아는 결코 단순한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질서만으로 움직인 세계가 아니었다. 실제 역사 자료를 보면 단군조선,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 등은 때로는 중국 왕조를 통제하며 혹은 경쟁하며 자신들만의 천하관을 구축하려 했던 다원적 질서의 주체이자 대부분 황제국(천자국)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런 주장을 한다.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이들의 정서와 한국 내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오히려 중국 정부로 하여금 동북공정식 역사 인식과 정책을 더욱 강화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역사관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자극한다"는 주장은 얼핏 그럴듯해 보일 수 있으나,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허약하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전형적인 프레임 전환에 가깝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특정 민간 역사서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추진된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의 국경 안정과 소수민족 통합, 역사 주도권 확보를 위한 국가 전략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추진되어온 정책이다.

오히려 역설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국제사회에서 일정 부분 설득력을 얻는 배경에는, 주류 역사학계가 여전히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 고조선 축소론과 같은 식민사학적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 존재한다. 중국은 바로 그 틈을 활용한다. 즉 문제의 본질은 『환단고기』 자체가 아니라, 한국 스스로 자국 고대사를 지나치게 축소하고 약화시켜온 구조적 현실에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적 낙인찍기나 비난이 아니라 냉정하고 치밀한 검토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특정 역사서를 향한 반작용이 아니라 중국 국가전략의 산물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역사에 대한 위축과 침묵이 아니라, 더욱 깊이 있는 연구와 국제적 역사 담론의 강화다.

이번 「21세기 대군부인」 논란은 결국 K-콘텐츠 시대의 문화 주권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다. 이제 드라마와 OTT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세계인에게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사실상의 역사 교과서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역사 속에 살고 있는가? 정말 한반도 안에만 갇혀 있었는가? 우리의 역사는 정말 속국의 역사였는가? 속국이 아니라 속구 살아온 것은 아닌가?

드라마를 보던 많은 시청자들이 다른 의미에서 '만세'에 익숙한 상황에서, 극 중 반복되는 "천세, 천세"라는 표현에 불편함과 위화감을 느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이제는 왜 우리의 역사와 상징 체계가 스스로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굳어졌는지, 이른바 '천세의 역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잊혀졌거나 축소되어 온 '만세의 역사'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 보다 주체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이제는 스스로를 낮추는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 속 자주성과 당당함을 회복하려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제 환단고기를 다시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금기와 편견 속에 밀려났던 기록들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조롱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역사 의식이 등장했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차분히 읽고 연구하며 검토해야 한다.

잃어버린 상고사의 기억과 자주적 세계관을 되찾으려는 노력 없이, 우리의 역사 인식은 끝내 '천세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는 환단고기를 다시 읽고, 다시 질문하고, 다시 연구할 때다.



박찬화 (사)대한사랑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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