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읽기] 제13장-석교동 돌다리, 자비가 놓은 모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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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읽기] 제13장-석교동 돌다리, 자비가 놓은 모두의 길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5-18 16:23
  • 신문게재 2026-05-19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석교동은 조선 시대 학자 남분붕 선생이 방생한 잉어의 도움으로 마을 사람들을 위한 돌다리를 놓았다는 보은 설화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이 전설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편의를 우선시한 선조의 덕망을 보여주며, 은혜를 갚는 동물의 서사를 통해 인간이 지녀야 할 도리와 자비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비록 세월이 흘러 풍경은 변했으나 석교동이라는 지명은 오늘날까지 남아 생명 존중과 나눔의 정신을 소중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봉소루
대전시 중구 석교동에 소재한 '봉소루' /사진=한소민 소장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마을 이름에는 한 시대를 살아간 누군가의 삶과 교훈이 깃들어 있기도 합니다. 대전 중구의 석교동(石橋洞)이 그러하지요. '돌다리'라는 뜻의 이 지명에는 자비를 베푼 사람과 은혜를 갚은 동물, 그리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함께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자 교육자인 남분붕(1605~1674)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보문산 남쪽 자락에 봉소루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냈습니다. 선생은 틈틈이 낚시를 즐겼지만 잡은 물고기를 살려주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었는데, 잉어는 인사라도 하듯 물가를 한참을 맴돌다 깊은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선생의 꿈속에 나타나 '개울에 다리가 없어 사람들이 건너기 어려우니 조금 아래에 있는 큰 바위를 찾아 다리를 놓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튿날 그곳에 가 보니, 과연 잉어가 일러준대로 커다란 바위를 찾을 수 있었지요. 선생은 바위를 개울로 옮기게 해 다리로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주민들은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때부터 이곳은 돌다리가 있는 곳이라 하여 '돌다리마을'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석교동이라는 지명의 시작이었지요.

봉소루 묶어
봉소루 앞 대문과 봉소루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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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소루에서 바라본 녹음이 싱그럽다. 사진=한소민 소장
이 전설은 잉어보은설화인 방리득보(放鯉得寶)설화의 변형입니다. 전통 설화에서 어부는 살려달라는 잉어의 애처로운 눈빛을 마주하고는 차마 외면하지 못해 물에 놓아줍니다. 이후 꿈속에 나타난 잉어는 자신이 용왕의 아들임을 밝히며 용궁으로 안내 하지요. 어부는 용궁으로 가서 귀한 대접를 받은 뒤 무엇이든 이루어지게 하는 요술 구슬까지 얻어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동물 보은의 서사는 머리를 부딪쳐 선비를 살린 까치나, 목에 걸린 가시를 빼준 스님을 평생 지켜준 호랑이, 먹이를 챙겨준 처녀를 위해 대신 지네에게 희생한 두꺼비 등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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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중구 석교동행정복지센터 앞에 있는'석교동' 돌다리 전설을 상징하는 유래석과 설명문 사진=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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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소민 소장
세계적으로도 무수한 이야기들이 전해지는데, 후한의 양보가 다친 황새를 고쳐주어 그 보답으로 보물을 얻게 되는 중국의 황작함환(黃雀銜環)이나 가난한 노부부가 덫에 걸린 두루미를 살려주자 그날 밤 여인이 되어 찾아와 베를 짜주며 도움을 주었다는 일본의 설화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지요. 서양의 대표적인 예로는 고대 그리스 이솝우화의 '사자와 생쥐'가 있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낮잠을 깨운 생쥐를 잡아 먹으려고 했지만 살려달라며 언젠가는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생쥐의 간청을 듣고 놓아주게 됩니다. 훗날 사자가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생쥐가 나타나 날카로운 이빨로 그물을 끊어 사자를 구해주었지요. 이야기 속 동물들은 모두 인간의 선행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이야기들을 즐겨 전해왔을까요? 동물 보은설화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크건 작건 간에 서로 감응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도움 받은 것에 보답해야 한다는 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동물들을 통해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보은의 마음을 일깨우며, 배은망덕한 인간을 꾸짖고 우리의 이기심의 되돌아보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석교동 돌다리 전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대부분의 보은설화가 주인공 개인의 물질적 풍요나 가문의 영광으로 끝나는 데 비해 남분붕 선생이 받은 보답은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평소 마을 주민들의 어려움을 세심히 살피며 공동체의 안녕을 헤아렸던 마음 씀씀이와 봉소루를 지어 향촌 교육에 힘 썼던 그의 덕망이 투영된 것일 테지요.

잉어가 전해준 보은이 돌다리가 된 마을에 수많은 세월이 흘러 풍경은 많이도 변해 버렸습니다. 개울은 자취를 감추었고 돌다리도 그 자리를 벗어났지요. 하지만 석교동이라는 이름만큼은 여전히 살아남아 아름다운 옛 이야기를 기억하게 합니다. 돌다리 남씨라 불리는 고성남씨 후손들 또한 선조가 남긴 자비의 이야기들을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전하고 있지요.

언덕 위 아늑하게 자리한 봉소루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합니다. 눈부시게 싱그러운 오월이네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 소장
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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