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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식 배재대 특임교수·도시행복아카데미개설준비위원장 |
최근 IT업계의 엄청난 이익 실현과 배분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노동가치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역사 이래로 철학자들은 일과 노동의 개념을 분리 파악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생존과 국가 유지를 위한 필연성의 영역을 노예의 노동이라 부르고, 플라톤(Platon)은 각 계층이 자신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정의이며, 장인과 농부의 노동을 철학자의 사색과 왕의 통치와는 위계적으로 구분합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규칙인 -기도하고 일하라-는 노동을 영적 수련과 동등한 가치로 격상시키기도 했습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노동을 세속적 소명으로 격상시켜 자본주의 정신을 낳았다고 분석합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노동과 일, 행위를 구분하며 진정한 인간적 활동은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공자는 직접 노동보다는 덕(德)의 실천과 예(禮)의 학습을 중시하나 농업만은 백성의 삶과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보았습니다. 주자학이나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학문과 생산 활동은 분리되지 않으며, 주경야독과 일상의 노동도 수양의 방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유교적 근면 윤리와 압축 근대화의 성과 우선주의가 결합하여, 일은 생존을 위한 활동이며 동시에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회문화적 척도가 되었습니다. 일과 노동을 정의하려면 의무와 소명으로서의 인정 여부, 노동의 위계와 평등이라는 민감한 부분이 포함됩니다. 지적 활동과 육체노동, 원청 노동과 하청 노동 사이의 위계 인정과 저항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좋은 일자리 논쟁의 핵심입니다.
동서양의 철학적 통찰이 함께하는 방향성은 일은 생존의 수단이며 동시에 의미의 원천이어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입니다. 의미가 빠진 일은 허무감과 권태를 강화할 뿐입니다. 일(Work)이 내포한 생존과 의미의 양대 요소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완성시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색, 공자의 덕, 마르크스의 유적 본질 등이 향하는 곳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신천식 배재대 특임교수·도시행복아카데미개설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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