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의 시조 풍경-15]동경(銅鏡)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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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오의 시조 풍경-15]동경(銅鏡)의 표정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 승인 2026-05-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파랗게 녹이 핀 동경 속을 들여다보니

일그러진 얼굴 반쪽 천진하게 웃고 있다

덫 칠한 꿈도 말라붙어

뒤틀린다 뜨거운 몸



말갛게 닦고 보니 내 얼굴에 녹이 폈다

함부로 쓴 삶의 자국 끊기고 엉긴 주름

비단폭 혈서로 쓴 만사(輓詞)

펄럭인다 동경 가득



<시작 노트>

거울을 바라보면 거기 내가 있다. 거울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고 옛날 사람들은 동(銅)으로 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동경(銅鏡)을 보면 신라의 공주님도 거기 들여다본 자국이 쌓여있고 내가 보면 그 자국위에 내 모습이 쌓여간다. 거울을 바라볼 때는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표정도 보고, 꿈도 보고, 자신의 마음도 보고, 마음에 간직한 온갖 상태를 다 볼 수 있다. 동경은 말갛게 닦으면 빛나는 본래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후회와 반성과 욕심과 기쁨과 희망과 아픔과 슬픔이 다 비쳐져 감출 수가 없는 녹으로 피어난다. 살아온 날을 생각하면 주름으로 나타나는 회한이 다 보인다. 전통적으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벗들이 몰려와 비단자락에 그의 삶을 생각하며 만사(輓詞)라를 글을 지어 먹물로 써서 상여가 나갈 때 들고 뒤따른다. 내가 죽으면 친구들이 어떤 만사를 써주고 싶을까 생각한다. 나 자신의 만사를 직접 쓰놓는다고 생각하니 혈서로 쓰고싶은 사연이 너무나 절절하다. 동경에 비친 나의 회상들이 가득히 펄럭인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자세히 보면 더 깊은 회한과 참회가 펄럭인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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