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입에 거친 음식이 몸에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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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입에 거친 음식이 몸에는 좋다

채경욱 중경한방병원 대표원장

  • 승인 2026-05-11 16:50
  • 신문게재 2026-05-12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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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욱 중경한방병원 대표원장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어찌 보면 지렁이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입으로 들어온 음식이 긴 관을 지나가며 필요한 영양은 흡수하고, 필요 없는 것은 밖으로 내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도 하나의 긴 튜브 같은 존재인 셈이다.

우리 몸은 이 긴 관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음식이 입에서 위와 장을 지나가는 동안 몸은 필요한 영양분을 얻고 해로운 것은 걸러낸다. 이 과정이 바로 소화다. 입은 단순히 음식을 집어넣는 구멍이 아니다. 치아로 잘게 씹는 순간부터 소화는 시작된다. 침 속 효소는 탄수화물을 분해하기 시작하고, 충분히 씹는 행위는 위와 장에게 음식이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내 소화액 분비를 준비시킨다.

외부에서 지나치게 부드럽고 먹기 편하며 흡수하기 좋게 가공된 음식은 이 시스템을 점차 약하게 만든다. 반면 가공되지 않은 거친 음식은 소화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도록 자극한다. 흰쌀, 흰 빵, 과자, 설탕 음료처럼 쉽게 녹고 삼켜지는 음식은 장을 충분히 자극하지 못한 채 바로 흡수되어 혈당을 급격히 높인다. 반대로 현미, 채소, 통곡물, 껍질째 먹는 과일은 씹는 과정을 늘리고 장운동을 활성화한다. 껍질 속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고, 장 점막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혈당도 천천히 올린다.

영양소 측면에서 봐도 현미의 껍질에는 식이섬유와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지만 도정을 거친 흰쌀은 이들이 대부분 제거된 상태다. 사과나 포도 껍질의 항산화 성분, 감자나 당근 껍질의 미네랄처럼 중요한 영양소는 대개 껍질 가까이에 몰려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껍질을 벗기고 도정하며 몸에 필요한 영양소까지 버리고 있다. 자연은 본래 우리에게 유익하고 완전한 형태로 먹거리를 제공하지만, 인간은 지나치게 부드럽고 편한 형태만 추구하다 여러 방면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습관으로 약해진 소화관은 최근 자주 언급되는 '장누수증후군'과도 연관될 수 있다. 장 점막은 필요한 영양분만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촘촘한 방어벽 역할을 한다. 그런데 초가공식품 섭취와 음주,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등이 반복되면 장은 할 일이 줄어들며 점차 손상되고 장벽 또한 약해진다. 그러면 들어오지 말아야 할 독소나 세균 부산물, 심지어 덜 분해된 음식물 입자까지 혈액 속으로 새어 들어갈 수 있고. 몸의 면역 체계는 이를 침입자로 인식해 계속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이는 만성 피로, 피부 문제, 소화불량, 면역 저하 같은 다양한 증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부패와 발효의 차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패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나 식중독이 생기는 이유는 나쁜 세균이 먼저 음식을 가로채 소화 과정을 끝낸 부산물을 우리가 먹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소화할 틈도 없이 독소가 바로 흡수되는 셈이다. 결국 남이 대신 소화한 물질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스스로의 소화 과정을 생략한 채 이를 곧바로 흡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건강한 식습관의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너무 많이 깎지 않은 음식, 정제하지 않은 음식, 누군가 대신 소화주지 않은 음식, 가급적 자연의 형태를 유지한 음식을 섭취해 우리 소화기관이 제 역할을 균형 있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조금 거칠고 오래 씹어야 하는 음식이 오히려 소화기관을 튼튼하게 단련하고 면역력을 지켜준다. 입에서는 조금 투박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우리 몸속 장기들은 그런 음식을 더 반긴다. 편리함과 부드러움만 좇는 식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씹고 소화하며 흡수하는 힘을 되찾아야 한다.
채경욱 중경한방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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