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그들은 '그린 마일'의 존 커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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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그들은 '그린 마일'의 존 커피가 아니다

황미란 지방부장

  • 승인 2026-05-06 08:49
  • 수정 2026-05-06 15:50
  • 신문게재 2026-05-07 18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내사진-칼럼
황미란 지방부장
차가운 형광등 아래, 짙은 초록색 바닥이 깔린 긴 복도를 한 남자가 걷는다. 영화 '그린 마일'에서 사형수가 전기의자로 향하는 이 마지막 길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경계선이다. 발걸음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묵직한 침묵이 감옥 안을 채우고, 간수들의 얼굴에는 집행자로서의 단호함 대신 형언할 수 없는 흔들림이 스친다.

영화 속 존 커피는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거구의 사내다. 위협적인 외형과 달리 타인의 고통을 치유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그는, 끝내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한 채 죽음으로 향한다. "신의 기적을 내 손으로 끊어내는 죄를 감당할 수 있는가." 그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연약함을 깨달은 간수 폴은 깊은 고뇌에 빠지지만, 법은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존 커피는 "세상의 고통이 너무 많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행위는 그렇게 완성되지만, 누구도 그것을 완전한 정의라 부르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 속 안타까운 비극은 스크린을 벗어나는 순간 산산조각 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범죄들은 CCTV와 디지털 기록을 통해 그 잔혹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사형이 당연하지 않은가" 흉악 범죄의 실체를 목격하며 대중이 던지는 외침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국가의 사법 정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집행이 중단된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법전에는 여전히 사형이 존재한다. 이 기묘한 공백 속에서 사법 정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집행 유예를 철회하고 사형 제도를 강화하며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근본적 의무를 강조하고 나선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인권 논쟁이 거세지만,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유지해온 '유예'가 과연 성숙한 성찰의 산물인지, 아니면 결론을 회피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방관인지 말이다.

피해 유가족이 마주하는 것은 바로 이 '유예된 정의'가 주는 또 다른 폭력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리는 메울 길 없는 깊은 흉터로 남았는데 가해자는 국가의 보호 아래 생존을 이어간다. "왜 가해자는 살아 있고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가"라는 물음은 법의 잣대만으로는 잴 수 없는, 피해자의 무너진 삶이 던지는 절규다.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는 현 상태는 신중함이라기보다, 사법적 선택을 지연시키며 책임을 유보하는 것에 가깝다.

이제 우리는 실질적인 보안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가해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확립하고, 지능형 감시 시스템 고도화 등 예방적 보안망에 압도적인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 역시 '회복적 정의'의 핵심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가해자의 생명권을 위해 사형을 유예한다면, 그만큼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는 데 더 치열한 노력을 쏟아야 형평이 맞는다.

마지막 순간, 존 커피는 죽음보다 어둠이 두렵다며 얼굴에 두건을 씌우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빛을 갈구한 순수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흉악 범죄자들은 존 커피가 아니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국가가 결단을 지연시키는 사이, 피해자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두건을 쓴 채 상실의 어둠 속에 홀로 갇혀 있다.

한국의 사형제는 멈춰 서 있다. 정의는 선언되는 것만큼이나 실행될 때 가치를 갖는다. 국가가 생명을 박탈하는 스위치를 내리지 않기로 했다면, 그 멈춤은 방관이 아닌 무거운 책임의 응답이어야 한다. 초록색 복도 끝에서 멈춰 선 국가는 이제 피해자의 어둠을 걷어내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황미란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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