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인생의 속도를 함께 만드는 사람, 페이스 메이커의 교육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인생의 속도를 함께 만드는 사람, 페이스 메이커의 교육

김정숙 충남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6-04-07 17:12
  • 신문게재 2026-04-08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60407090601
김정숙 교수
2월 중순, 한 도시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출발선에서부터 결승선까지, 선수들의 호흡과 움직임을 온전히 따라가다 보니 마라톤이 왜 인생에 자주 비유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선수들은 속도와 지구력, 그리고 호흡의 완급을 끊임없이 조절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통과 인내, 그리고 끝내 완주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애잔함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날의 풍경 속에서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페이스 메이커'였다.

페이스 메이커는 말 그대로 속도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그는 선수들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최상의 기록을 낼 수 있도록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선두에서 길을 연다. 보통 30킬로미터 지점까지 함께 달린 뒤 임무를 마치고 물러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속도와 리듬은 결승선까지 이어진다. 그는 단순히 함께 달리는 동반자가 아니다. 선수들의 기록에는 언제나 이들의 보이지 않는 기여가 자리하고 있다.

달리는 동안 페이스 메이커는 끊임없이 시계를 확인하며 속도와 시간을 조율한다. 미세한 속도의 차이가 전체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말 없는 신호로 선수들과 소통한다. 앞서지 말라는 손짓,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라는 눈빛, 조금만 더 버티라는 격려의 몸짓. 언어를 초월한 이 소통은 오히려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전달된다. "걱정하지 말고 따라 오라"는 무언의 메시지 속에서 선수들은 불안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신의 페이스에 집중하게 된다.

이 장면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교육 현장이 떠올랐다. 여전히 많은 경우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로 이해되지만, 오늘날 그 역할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확산 되는 시대에, 지식 자체는 더 이상 교육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학생이 자신의 속도로 이해하고, 탐색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자는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의 리듬을 설계하고 유지하도록 돕는 '페이스 메이커'에 가깝다.

교육은 결국 학생 각자의 레이스를 완주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더라도 학생마다 속도와 호흡, 목표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빠르게 앞서가고, 누군가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교와 경쟁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리듬을 발견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억지로 자세를 교정하거나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오히려 '오버 페이스'를 부를 수 있다. 진정한 성장은 자신에게 맞는 템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마라톤에서 흔히 말하듯, 진짜 승부는 30킬로미터 이후에 시작된다.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선수들을 흔든다. 그 순간을 버티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축적된 훈련과 자기 신뢰다. 교육 또한 다르지 않다. 초반의 성취나 단기적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조율하며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실패와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리듬을 회복하는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이고 성장이다.

페이스 메이커는 결승선까지 함께하지 않는다. 어느 지점에서 조용히 물러나고, 이후의 레이스는 온전히 선수 자신의 몫이 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자는 학생을 대신해 목표를 이루어 줄 수 없다. 다만 중요한 지점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서 속도를 맞춰주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그 역할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학생의 성장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닐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강의실에는 출발의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다. 다양한 봄꽃이 제 속도로 피어나듯 학생들의 가능성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이 자신의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조급함이 오버 페이스로 나아가지 않도록,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연대의 리듬이 교육 현장에 단단하게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김정숙 충남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LOL캐릭터 대전에 다 모였다. 페이커 보러 왔다 발복 잡히는 곳
  2. 김하균 행정부시장, 2년 9개월 세종시 동행 마친다
  3. [조상호 세종시장 공약 돋보기] 시민 소통 '핵심 플랫폼', 차별화로 승부하라
  4.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
  5. 표준연, 양자컴퓨팅 국내기업 美 현지진출 돕는다
  1. 아산시 온양6동 온주마을, 국토부 '우리동네 살리기 프로젝트' 선정
  2. 지역 안전문화 확립 업무협약 체결
  3. 아산신협, 장학금 400만원 쾌척
  4. 아산시, 교육 지원체계 전면 개편
  5. 순천향대천안병원 이한유 센터장, 엘살바도르 산모·신생아 응급의료 역량 강화 지원

헤드라인 뉴스


서천 노루섬에 전 세계 노랑부리백로의 2%.저어새 5% 서식 확인...서천지속협 모니터링 결과

서천 노루섬에 전 세계 노랑부리백로의 2%.저어새 5% 서식 확인...서천지속협 모니터링 결과

충남 서천군 앞바다의 작은 무인도인 노루섬이 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새들의 최대 규모 번식지로 부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서천군지속협 기후생태환경분과위원회가 2일 환경부 특정도서인 마서면 노루섬과 유부도 인근 검은여 일대에서 실시한 2차 조류 모니터링 결과 전 세계 노랑부리백로의 2%, 저어새의 5%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적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이번 모니터링에는 충남연구원 정옥식 박사와 서천지속협 전홍태 위원, 홍성민 사무국장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노루섬에서 확인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천연기념물..

천안법원, 노조 지회장에 불이익 준 주류회사 관계자 벌금형
천안법원, 노조 지회장에 불이익 준 주류회사 관계자 벌금형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2단독은 노조 지회장에 불이익을 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500만원, B씨에게 벌금 250만원, C사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 등은 피해자가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 노동조합 가입 및 지회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사용자와 9회에 걸쳐 단체교섭을 실시했다는 이유로 2022년부터 배송담당지역을 천안시에서 서산시, 당진시 등 원거리로 변경하는 인사발령조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피해자가 2018년 5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보은군 속리산 연꽃단지, 연분홍 연꽃 활짝 피어
보은군 속리산 연꽃단지, 연분홍 연꽃 활짝 피어

보은군 속리산 천연기념물 정이품송 인근에 조성된 ‘속리산 연꽃단지’가 만개한 연꽃으로 장관을 이루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어지고 있다. 약 1만 6000㎡ 규모의 속리산 연꽃단지에는 4000여 포기의 연꽃이 식재돼 있으며, 연분홍빛과 흰빛 연꽃이 어우러져 한여름의 정취를 물씬 자아낸다. 단지 곳곳을 가득 메운 연꽃은 푸른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가족 단위 나들이객은 물론 사진 애호가와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연꽃단지는 데크 산책로와 잔디공원이 함께 조성돼 있어 연꽃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

  •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 ‘개문냉방 안돼요’ ‘개문냉방 안돼요’

  • ‘함께하는 가치, 소비자의 힘’ ‘함께하는 가치, 소비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