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회자정리 거자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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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회자정리 거자필반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 승인 2026-04-06 10:43
  • 신문게재 2026-04-07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양성광 원장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한 달만 있으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마무리 못 한 일이 남아서 아쉽기도 하나, 최선을 다했으니 나름 홀가분하다. 정작 아쉬운 점은 새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헤어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지금 헤어지면 이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차제에 40년간의 직장 생활을 완전히 마친다고 생각하니 헤어짐의 아쉬움이 더 와닿는다. '만나면 헤어짐이 정해져 있다(회자정리)'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깨달을 때도 됐는데, 나이를 헛먹은 모양이다.

대학을 졸업하며 과 친구들과 헤어질 때는 이런 아쉬움이 없었다. 언제든 다시 만날 거로 생각했었는데, 돌아보니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친구도 꽤 된다. 그 후 대학원에 다니고 직장을 잡은 후 결혼하고 애도 생기고 그 애가 대학을 졸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다. 기억조차 못 하는 사람도 많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 가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이도 있다. 이제는 그런 기억마저도 점점 파편화되고 옅어져 사라져가는데, 그게 세월인가 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또한 나를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어떤 이는 벌써 나를 기억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나도 모르게 내가 준 상처로 여태껏 아파할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에게 혹시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인연은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하는 좋은 인연의 범주는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MBTI에 따라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넓고 얇게, 어떤 이는 좁고 깊게 연을 맺는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오해가 쌓이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기는 몇 안 되는 깊은 인연이라 생각하고 온갖 정을 다 주었는데, 상대방은 그저 여러 관계 중 하나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경험이 쌓이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관계를 정립하는 지혜가 생긴다는 점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20대 중반에 호기롭게 맞았던 직장 생활은 어찌저찌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60대 중반에 맞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는 여생(餘生)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길과 스스로 의미를 찾아 개척해 가는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라는 선택지가 놓여 있다. 두렵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길에 자꾸만 눈이 가는 까닭은 존재의 의미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익히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무모하게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길이어서 더듬어 나가려면 어둠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으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해서 어디까지 갈 것인지의 선택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용기를 내 첫발을 떼고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지난 자리에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에 걸맞은 의미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새로운 길에 들어섰는데도, 자꾸 지나온 길을 돌아보거나 그 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아는 척하고 훈수 두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나온 길과 디커플링한다는 마음으로 관계를 끊어야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인연은 생각처럼 단박에 끊어지지 않는다. 새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과거의 인연은 끊어져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할 것이다. 진짜 인연이라면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불경의 가르침(거자필반) 대로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미래는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예측하기 어렵다. 호기롭게 도전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새롭게 개척해 나갈 나만의 길을 기대하면서 울퉁불퉁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었던 이 길의 끝까지 잘 달려가야겠다./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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