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6장-부사샘, 여전히 샘 솟는 화합의 신화

  • 문화
  • 문화/출판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6장-부사샘, 여전히 샘 솟는 화합의 신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3-17 15:06
  • 수정 2026-03-17 17:24
  • 신문게재 2026-03-18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부사샘 전설은 갈등하던 두 마을의 연인인 부용과 사득의 비극적인 사랑과 이들의 영혼결혼식을 통해 마른 샘이 다시 솟아났다는 화합의 유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연인의 죽음을 공동체가 함께 보듬어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의 길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동서양의 다른 비극적 설화들과 차별화되는 가치를 지닙니다. 현재 부사칠석놀이로 계승되는 이 전설은 전쟁과 불화로 희생된 영혼들에 대한 공동체의 참회이자, 현대 사회에 진정한 화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PYH2013081308950006300_P4
2013년 8월 13일 대전시 중구 부사동 부사샘터에서 열린 '2013 부사칠석문화제'에서 주민들이 풍물놀이를 하고 있다. 애틋한 연인의 사랑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연합DB
대전 중구 보문산 자락에는 오래된 샘 하나가 있습니다. 마을 언덕길 위, 두 남녀의 조각으로 새겨져 있는 이 샘터에는 백제 시대부터 전해오는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옛날 부사동에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있었습니다. 두 마을 사이에 샘 하나가 있었는데, 가뭄이 들 때마다 물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지요. 바로 그 샘터에서 윗마을 처녀 부용과 아랫마을 총각 사득은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마을의 갈등도 둘의 사랑을 막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신라와의 전쟁이라는 커다란 시련이 닥쳐와 사득은 전장에 끌려가게 되었고, 결국 목숨을 잃게 됩니다. 부용은 날마다 뒷산 선바위에 올라 사득이가 돌아오기 만을 애타게 기다렸지요.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친 부용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 뒤로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고 샘이 말라버려 모두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두 마을 어르신들의 꿈에 부용과 사득이가 나타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기를 간청하며, 그렇게 되면 샘이 다시 솟을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모아 칠석날 두 연인의 혼례를 정성껏 올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샘에서 다시 물이 솟아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샘을 두 연인의 이름을 따서 '부사샘'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부사샘 전설은 세계 곳곳에 전해지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먼저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으로 알려진 고대 바빌론의 '피라모스와 티스베' 신화가 그러하지요.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지만 서로 왕래할 수 없었습니다. 두 가문이 원수지간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텄고, 담벼락에 난 작은 틈 사이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몰래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두 사람은 성 밖 뽕나무 아래에서 만나 함께 도망치기로 약속합니다. 하지만 엇갈린 오해로 피라모스는 티스베가 사자에게 죽은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티스베 역시 연인을 따라 생을 마감하지요. 전설에 따르면 그때 흘린 두 사람의 피가 땅에 스며들어 하얗던 뽕나무 열매가 붉게 변했다고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전해지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 역시 비슷합니다. 서로 사랑했던 견우와 직녀는 하늘의 노여움을 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1년에 한 번 칠석날이 되면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준 다리를 건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용과 사득의 영혼결혼식이 칠석날에 이루어진 것도 이 오래된 설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죽어서 나비가 되어 함께 날아오른 중국의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처럼,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죽음 뒤에야 완성되는 서사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부사샘 전설의 진정한 가치는 비극적 사랑 너머에 깃든 '공동체의 화합'에 있습니다. 부용과 사득의 사랑은 단지 두 사람의 슬픈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샘을 차지하려 다투던 마을 사람들은 가뭄이라는 시련 앞에서 비로소 마음을 모았고, 못다 한 두 연인의 사랑도 완성해 주지요. 마을의 불화와 나라간의 전쟁이 갈라놓았던 사랑은, 죽음 이후의 결합을 통해 공동체를 살리고 화합으로 이끄는 마중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전설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숨겨진 함의를 찾아보게 됩니다. 전장의 포화 속에서 스러져간 젊은 청춘들과 그들의 못다 한 사랑을 향한 기성세대의 속죄입니다. 그날의 영혼결혼식은 비단 부용과 사득만을 위한 의식은 아니었을테지요. 어쩌면 그것은 갈등과 전쟁이라는 모진 세파 속에서 끝내 지켜주지 못했던 수많은 영혼들에게 바치는 공동체의 참회이자, 저세상에서나마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애절한 기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두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공동체가 함께 보듬을 때 비로소 마른 우물이 다시 차올랐다는 부사샘 전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온 그 맑은 울림은 지금 '부사칠석놀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갈등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화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자리가 되고 있지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민주당 대전시당 청년위원장에 이용석 출마…"청년정치에 '새로고침' 누르겠다"
  3. 천안도시공사, 천안추모공원 노후시설 개선으로 추모객 보행환경 편의성 높여
  4. 금성백조, 추석 맞아 복지시설에 위문품 전달
  5. LH대전충남본부, 영구임대주택 취약계층 찾아 나눔 활동
  1. 태안 앞바다 5번째 침몰선 실체 드러날까…금강~한양까지 25일 '조행일록' 눈길
  2. 천안시, 찾아가는 아동학대 예방교육으로 아동 인식개선 '시동'
  3. tbn충남교통방송, '추석 교통안전 특별방송' 실시
  4. 연암대, 전국 33개 고교 104명 참가 '2026 스마트원예 고교 경진대회' 개최
  5. 장기수 천안시장, 추석 앞두고 민생 행보…전통시장·노인복지관 방문

헤드라인 뉴스


60년 전 대전 한가위!"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60년 전 대전 한가위!
"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1966년의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당시 중도일보는 명절 당일 지면을 통해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열기와 함께 서민들이 체감했던 삶의 단면들을 다채롭게 조명했습니다. 신문 지면에 남아있는 주요 기사들을 통해 그 시절 추석 풍경을 되짚어봅니다.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뜨거웠습니다. 당시 중도일보는 歸省客 幅增 (귀성객 폭증)이라는 대형 헤드라인과 함께 大田驛 乘客 85% 急增 (대전역 승객 85% 급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열차와 버스 등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