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칙적 찬성, 현실적 반대"라는 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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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원칙적 찬성, 현실적 반대"라는 말의 함정

소순창/건국대 교수, 전 한국지방자치학회장

  • 승인 2026-03-05 11:07
  • 수정 2026-03-05 14:4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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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창 교수
최근 시·도 통합 논의가 확산되면서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통합에 찬성하지만, 지금의 절차와 방식에는 반대한다." 언뜻 보면 매우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표현이 때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안전한 위치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닌, 가장 비판받기 어려운 위치이기 때문이다. 통합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추진 방식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는 학문적 논의로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책 현실 속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절차의 완성인가, 재정 구조의 확정인가, 주민 합의의 완전한 일치인가.'

이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수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논의는 언제나 더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자체 통합 등 행정개혁의 역사에서 완벽한 합의와 완벽한 제도 설계가 먼저 이루어진 뒤 개혁이 시작된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제도 변화는 정치적 결단과 제도적 보완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 담론은 통합 논의가 정치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 구조 변화는 대부분 정치적 의제에서 출발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도 그랬고, 특별자치도나 특별자치시 역시 정치적 결단 속에서 시작되었다.

'정치는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을 설정한다. 행정은 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한다. 학계는 이를 분석하고 보완한다.' 이 세 영역이 분리된 채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에 문제다"라는 접근은 현실 정치와 정책 형성 과정의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일 수 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정책 '기회의 창'이다. 정책 변화는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맞물릴 때 가능하다. 이러한 기회의 창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 정치 환경이 바뀌면 논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반대나 유보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일 것이다. "지금 방식은 문제다"라는 주장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학계의 역할은 정책 추진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정치와 정책 실행의 제약 속에서 더 나은 설계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충청권 통합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논의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왜곡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 정치 속에서만 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외면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다. 통합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식으로 통합을 설계하는 것이다.

정책 논쟁이 원칙의 언어에 머무를 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설계와 선택의 언어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칙적 찬성과 현실적 반대 사이의 안전한 위치가 아니라, 충청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소순창/건국대 교수, 전 한국지방자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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