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읽기] 제3장-소제동 며느리 바위와 뒤돌아 봄의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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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읽기] 제3장-소제동 며느리 바위와 뒤돌아 봄의 금기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2-24 11:1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소제호 전설은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본 며느리가 바위가 되었다는 서사를 통해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인 교훈을 전달합니다. 일제강점기 호수가 메워진 자리에 철도 관사촌이 들어섰던 소제동은 현재 재개발이라는 또 다른 변화의 기로에 서 있으며, 보존과 개발 사이의 지혜로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전설은 과거를 기억하되 그 자리에 머물러 굳어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며, 오늘날 소제동이 지향해야 할 변화와 발전의 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한소민 저자
한소민 소장
대전의 옛이야기들을 살펴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 한 곳에서 고립되어 발생한 게 아니라 타 지역 나아가 세계의 보편적 서사와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풍요를 갈망하고, 상실을 두려워하며, 금기를 통해 삶의 질서를 지켜온 인류보편의 경험이 시공간을 초월해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삶 속에서 얻은 통찰과 교훈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듭니다. 그러다 어느 한 지역의 고유한 풍토와 만나는 순간, 비로소 특정 공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생생한 이야기로 자리잡게 되지요. 오늘 살펴볼 소제호 전설 역시 국내 장자못 설화는 물론,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까지 그 맥락이 이어져 있답니다.

옛날 소제동에 욕심많은 부자 영감(장자)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영감은 찾아온 스님을 모욕하며 내쫓았고,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 몰래 시주를 하며 대신 사죄하였지요. 스님은 곧 물이 차오를 것이니 산으로 피하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던 며느리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 그만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순간 집터는 거대한 호수(소제호)가 되고, 며느리는 바위로 변하고 말았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장자못 전설의 한 부류입니다. 전승 과정에서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개 '집은 호수가 되고 며느리는 바위로 변했다'는 내용으로 마을의 대표지형인 물 웅덩이와 바위의 기원을 인과응보와 금기의 서사로 풀어낸 것이지요. 그런데 심술을 부린 영감이 벌을 받는 건 인과응보라 하더라도 선행을 베푼 며느리가 바위가 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뒤를 돌아보면 안되었고, 왜 하필 바위가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인류의 수많은 서사에 등장하는 '뒤돌아봄의 금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대표적이지요. 리라의 명수인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갑니다. 그의 연주에 감복한 저승의 신 하데스는 '지상의 빛을 보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으로 아내를 내어주지만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궁금했기에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그 순간 아내는 저승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지요. 성경 창세기에서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비극이 담겨있습니다.

어쩌면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는 단순한 행동의 제한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끊고 새로운 질서로 건너가라는 상징일테지요. 스님이 며느리에게 한 당부는 물에 잠겨 사라질 옛 질서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삶의 자리로 건너가라는 권유가 아니었을까요? 롯의 아내에게 내려진 경고도 결국은 같은 의미를 지녔을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과거를 내려놓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바위나 소금기둥처럼 굳어버린 존재가 되고 맙니다. 물리적 시간은 흐르지만 의식은 과거에 붙들린 채 멈취버리는 것이죠. 소제호의 전설에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겁니다.

대전역 뒤편 오래된 골목으로 자리한 소제동에는 절경으로 이름났던 소제호가 있었습니다. 2만 평이 넘는 넓은 호수에는 봄이면 개나리가 만개했고, 연꽃 사이로 물고기가 뛰놀던 아름다운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지요. 그러나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과 도시 확장으로 인해 호수는 메워지고 메마른 그 땅 위로 철도 종사자들의 관사촌이 들어서면서 소제동은 자연의 공간에서 근대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호수를 잃고 도시를 얻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낡은 관사촌은 '레트로'라는 문화자원으로 소비되고 있지요. 그리고 지금 소제동은 재개발이라는 또다른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장자의 집터가 호수가 되고, 메워진 그 자리에 관사촌이 세워지고, 그 공간이 다시 문화자원으로 소비되는 이 시간 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이정표 삼아야 할까요? 과거를 기억하되 그 자리에 바위처럼 굳어버리지 않는 것. 소제동 개발의 해법은 어쩜 이 오래된 전설이 전하는 가르침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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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전경 /대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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