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마음씨 착한 동생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준 대가로 무엇이든 끊임없이 나오는 요술주머니를 얻게 되었습니다. 욕심 많은 형이 가만 있었을리 없지요, 소식을 들은 즉시 찾아와 동생의 주머니를 빼앗으려했고,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주머니가 땅에 떨어졌는데 형이 발로 밟는 순간 흙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주머니 안에서는 끝임없이 흙이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거대한 산을 이루었지요. 이후 사람들은 보물주머니가 묻힌 산이라해서 보물산이라 불렀고 이후 보문산이 되었다고 하네요.
보문산 전설에 나오는 요술주머니는 신화에서 '풍요의 뿔'이라 불리는 상징의 변용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풍요의 뿔은 제우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아기 제우스에게 젖을 먹여 키웠던 암염소 아말테아의 뿔이 부러졌을 때, 제우스는 감사의 뜻으로 그 뿔에 원하는 음식이 무엇이든 솟아나게 하는 힘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양 미술과 조각에서 과일과 꽃이 넘쳐흐르는 뿔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풍요의 뿔이지요.
동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징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넣으면 계속해서 나오는 화수분 항아리나, 휘두르면 보물이 쏟아지는 도깨비방망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요술 주머니 등이지요. 이 모든 도구는 굶주림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이야기들은 늘 경고합니다. 풍요의 도구가 탐욕과 만나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한다는 사실을요.
이 경고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입니다. 미다스는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던 한 노인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 노인은 다름아닌 풍요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이었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소원을 물었고,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축복처럼 보였던 소원은 곧 저주가 됩니다. 배고픔을 달래려 집어 든 빵이 황금이 되고, 갈증이 나서 먹으려던 물은 금빛으로 굳어버립니다. 위로하며 손을 잡는 딸마저 황금 동상으로 변하고 말았지요.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미다스는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도움을 구하고, 팍톨로스 강에서 몸을 씻으며 참회한 뒤에야 비로소 마법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소유의 욕망은 물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구약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보문산 전설의 형제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물을 축복하자, 형 카인은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혀 동생을 죽이고 맙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혹은 타인의 인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견제하는 시기심은 형제마저 없애버릴 만큼 무서운 것이었지요.
세월이 흘러 요술주머니가 만들어냈다는 거대한 흙더미 위에는 나무가 자라고 길이 놓여 시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보문산의 숲길은 경쟁과 소유에 지친 인간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며, 가지지 않아도 충분한 상태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지요. 아직도 보문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요술주머니는 이제, 흙이 아니라 공존과 휴식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요술주머니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지만 때로는 그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무게에 짓눌리기도 하지요. 보문산을 찾고,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소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한 소유란 내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더불어 함께 누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요. 풀꽃 하나, 흙 한 줌 내 것으로 취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보문산의 주인이며, 그 넉넉한 품이 내어주는 자리에서 보물같은 즐거움들을 만끽하고 있으니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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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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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