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장-보문산과 소유의 욕망

  • 문화
  • 문화/출판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장-보문산과 소유의 욕망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2-09 15:16
  • 수정 2026-02-10 11:06
  • 신문게재 2026-02-11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
문화희망네트워크는 2019년 5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일환으로 대전시 중구 문화2동 충남기계공고 뒤편 마을의 오래된 가옥 벽에 보문산 전설의 유래를 벽화로 그려넣었다. 출처=대전시 중구 공식 블로그
대전 도심에 자리한 보문산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생태자원을 품은 시민들의 대표 휴식처입니다. 삶과 가까이 있기에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그 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또한 풍성하지요. 오늘은 보문산이라는 이름에 얽힌 유래 중 하나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옛날 마음씨 착한 동생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준 대가로 무엇이든 끊임없이 나오는 요술주머니를 얻게 되었습니다. 욕심 많은 형이 가만 있었을리 없지요, 소식을 들은 즉시 찾아와 동생의 주머니를 빼앗으려 했고,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주머니가 땅에 떨어졌는데 형이 발로 밟는 순간 흙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주머니 안에서는 끊임없이 흙이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거대한 산을 이루었지요. 이후 사람들은 보물주머니가 묻힌 산이라해서 보물산이라 불렀고 이후 보문산이 되었다고 하네요.

4
문화희망네트워크는 2019년 5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일환으로 대전시 중구 문화2동 충남기계공고 뒤편 마을의 오래된 가옥 벽에 보문산 전설의 유래를 벽화로 그려넣었다. 출처=대전시 중구 공식 블로그
보문산 전설에 나오는 요술주머니는 신화에서 '풍요의 뿔'이라 불리는 상징의 변용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풍요의 뿔은 제우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아기 제우스에게 젖을 먹여 키웠던 암염소 아말테아의 뿔이 부러졌을 때, 제우스는 감사의 뜻으로 그 뿔에 원하는 음식이 무엇이든 솟아나게 하는 힘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양 미술과 조각에서 과일과 꽃이 넘쳐흐르는 뿔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풍요의 뿔이지요.

동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징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넣으면 계속해서 나오는 화수분 항아리나, 휘두르면 보물이 쏟아지는 도깨비방망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요술 주머니 등이지요. 이 모든 도구는 굶주림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이야기들은 늘 경고합니다. 풍요의 도구가 탐욕과 만나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한다는 사실을요.

2
문화희망네트워크는 2019년 5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일환으로 대전시 중구 문화2동 충남기계공고 뒤편 마을의 오래된 가옥 벽에 보문산 전설의 유래를 벽화로 그려넣었다. 출처=대전시 중구 공식 블로그
이 경고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입니다. 미다스는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던 한 노인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 노인은 다름아닌 풍요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이었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소원을 물었고,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축복처럼 보였던 소원은 곧 저주가 됩니다. 배고픔을 달래려 집어 든 빵이 황금이 되고, 갈증이 나서 먹으려던 물은 금빛으로 굳어버립니다. 위로하며 손을 잡는 딸마저 황금 동상으로 변하고 말았지요.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미다스는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도움을 구하고, 팍톨로스 강에서 몸을 씻으며 참회한 뒤에야 비로소 마법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소유의 욕망은 물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구약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보문산 전설의 형제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물을 축복하자, 형 카인은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혀 동생을 죽이고 맙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혹은 타인의 인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견제하는 시기심은 형제마저 없애버릴 만큼 무서운 것이었지요.

세월이 흘러 요술주머니가 만들어냈다는 거대한 흙더미 위에는 나무가 자라고 길이 놓여 시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보문산의 숲길은 경쟁과 소유에 지친 인간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며, 가지지 않아도 충분한 상태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지요. 아직도 보문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요술주머니는 이제, 흙이 아니라 공존과 휴식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요술주머니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지만 때로는 그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무게에 짓눌리기도 하지요. 보문산을 찾고,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소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한 소유란 내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더불어 함께 누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요. 풀꽃 하나, 흙 한 줌 내 것으로 취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보문산의 주인이며, 그 넉넉한 품이 내어주는 자리에서 보물같은 즐거움들을 만끽하고 있으니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민주당 대전시당 청년위원장에 이용석 출마…"청년정치에 '새로고침' 누르겠다"
  3. 천안도시공사, 천안추모공원 노후시설 개선으로 추모객 보행환경 편의성 높여
  4. 금성백조, 추석 맞아 복지시설에 위문품 전달
  5. LH대전충남본부, 영구임대주택 취약계층 찾아 나눔 활동
  1. 태안 앞바다 5번째 침몰선 실체 드러날까…금강~한양까지 25일 '조행일록' 눈길
  2. 천안시, 찾아가는 아동학대 예방교육으로 아동 인식개선 '시동'
  3. tbn충남교통방송, '추석 교통안전 특별방송' 실시
  4. 연암대, 전국 33개 고교 104명 참가 '2026 스마트원예 고교 경진대회' 개최
  5. 장기수 천안시장, 추석 앞두고 민생 행보…전통시장·노인복지관 방문

헤드라인 뉴스


60년 전 대전 한가위!"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60년 전 대전 한가위!
"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1966년의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당시 중도일보는 명절 당일 지면을 통해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열기와 함께 서민들이 체감했던 삶의 단면들을 다채롭게 조명했습니다. 신문 지면에 남아있는 주요 기사들을 통해 그 시절 추석 풍경을 되짚어봅니다.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뜨거웠습니다. 당시 중도일보는 歸省客 幅增 (귀성객 폭증)이라는 대형 헤드라인과 함께 大田驛 乘客 85% 急增 (대전역 승객 85% 급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열차와 버스 등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