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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헌 변호사 |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빛바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가 기억하던 70년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낡은 교실이 현대적인 교실로 바뀌었고, 칼바람을 맞으며 운동장에서 치르던 졸업식은 이제 따뜻한 실내체육관에서 거행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숫자'였다. 내가 졸업하던 당시만 해도 250명이 넘는 졸업생과 그 가족들로 운동장이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올해 졸업생은 단 11명뿐이었다. 졸업생 가족과 재학생, 내·외빈을 모두 합쳐도 예전의 한 학급 인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8명이었던 졸업생이 올해 11명으로 조금 늘었다는 사실이 작지만 큰 위안이 되었다.
졸업식 막바지, 장내에 흐르는 노래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우리 세대에게 졸업식에서는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엄숙한 노래에 간혹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도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입술에서는 015B의 '이젠 안녕'이 흘러나왔고, 졸업식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꺼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라는 가사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에 실려 울려 퍼질 때,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시대는 변하고 노래도 바뀌었지만,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그 본질적인 정서만큼은 세대를 관통하며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 것은 노래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였다. 졸업생 11명 중 3명, 그리고 올해 입학 예정인 신입생 9명 중 무려 8명이 외국인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이었다. 무심코 '다문화 가정'이냐고 물었으나, 학교 측의 답변은 명확했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인 다문화 가정을 넘어, 부모 모두가 외국인인 '외국인 가정' 아이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의 문제는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도시의 학교도 학생이 줄어 도심의 학교가 폐교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의 모교도 이 외국인 아이들이 없으면 언제 폐교될지 모르는 일이다. 새삼 외국인 후배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이 다를지언정, 우리 땅의 물을 마시고 우리 산천을 바라보며 자라는 이 아이들은 우리의 문화를 습득하고 동화되어 뼛속까지 한국인이 되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킬 인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혈연과 민족, 국적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모든 아이를 편견 없이 보듬는 큰 품이 필요하다. 낯선 이방인의 아이들이 차별의 시선에 상처받지 않고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익히며 성장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 '추억', '친구' 등의 소중한 가치를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봄, 모교 교정은 서툰 한국어와 해맑은 웃음소리로 채워질 것이다. 숫자는 줄어들고 모습은 달라도, 그 아이들이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는 인구감소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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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