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5만리 동서 2만여리에 이르는 환국, 환인·환웅·단군의 긴 재위기간, 한민족이 수천 년 전부터 아시아 대륙을 호령했다는 것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고, 그 부인은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고주몽도 알에서 태어났다. 고주몽은 강을 건널 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줘서 건널 수 있었다. 현 역사학계가 기원후 4~5세기에 들어서야 국가다운 국가가 되었다고 하는 고구려는 서기 49년(모본왕 2년)에 중국 중심부 산서성까지 침략한다.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사람이 나타나서 조정에서 그를 크게 등용한다. 건국 초기 고구려의 위상이 낯설뿐더러 황당한 이야기들 아닌가?
『삼국유사』는 어떤가? 탈해가 버릇없는 사람이 자신의 물그릇에 입을 대자 입을 물그릇에 붙여 버린다. 하느님(상제)이 천사를 시켜 왕에게 옥대를 전해주기도 한다. 만파식적을 국보로 삼는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는 기후를 조절할 수 있는 마법의 피리다. 바다의 용이 사람을 납치하기도 한다. 황당한 사건들이 즐비하다.
그러면 두 책도 믿기 힘든 황당한 기록이 있으니 위서인가? 중국과 일본의 사서에도 이런 유사한 내용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많은 사건들은 황당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로 남겨둠이 바람직하다.
남북 5만리 동서 2만여리의 영토는 당시 척도 기준도 분명치 않으므로 얼마나 넓은 영토인지 알 수 없고, 환인, 환웅, 단군의 재위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도 한 사람일 수도 있고, 가문을 기록한 것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대에는 수명이 길었다는 것이 꼭 부정당할 이유는 없다. 한민족이 수천 년 전부터 아시아 대륙을 호령했다는 것이 왜 황당한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 대륙을 호령해도 되고, 우리나라는 그러면 안 되는가?
한영우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 등을 역임한 우리나라 사학계의 대가이다.
그가 저술한 『다시찾는 우리역사』에는 '홍산문화'의 존재를 연표로 제시하고 있다. 홍산문화가 무엇인가? 중국 내몽골 지역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유적으로 시기적으로는 단군조선과 황하문명 보다 앞선다. 중국에서는 이를 신비의 왕국으로 불렀다. 중국으로서는 홍산문화를 설명할 사료적 근거가 전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어떤가? 배달국의 존재는 홍산문화를 실증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한영우 교수는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한영우, 일지사, 2002)을 저술하면서, "현재의 「단군세기」가 후세에 가필된 부분은 있으나 행촌이 지은 母本을 토대로 한 것"(한영우 외 공저,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 58쪽)라고 하여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단군세기」의 실존성을 인정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태백일사」, 「북부여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단군세기」의 저자가 바로 행촌 이암이다. 『환단고기』는 계연수 선생이 지은 것이 아니고, 여러 선비 집안에서 소장해오던 사서들을 합본한 것 뿐이다. 역사관이 일치하는 고대 사서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삼국사기』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데 비해, 『환단고기』는 자주적인 역사관으로 쓰여진 사서이다. 그리고 그 저자들은 당대 최고의 대학자들이다.
중국 학자들이 언급한 홍산문명을 이룩한 '왕국'의 실체는 『환단고기』가 아니면, 말 그대로 '신비의 왕국'이 되어 버린다. 또한 한영우 교수는 행촌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를 『환단고기』에 합본된 「단군세기」의 모본(母本)으로 보았다. 한 교수에 따르면 실제 저자가 쓴 원본이 『환단고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진흙 속에 진주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학자들 역할이 아니던가?
도올 김용옥은 "우리나라는 스스로를 비하해야만 인정받으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우리나라는 못난이 역사를 가져야만 된단 말인가."라고 통탄했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양은모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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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