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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파운드리사업단 책임연구원·사무국장 |
바이오 제조는 일반 제조업과 달리 생명체(세포)를 다룬다. 미세한 온도 변화나 용존 산소량, 교반 속도 차이에도 결과물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이른바 '블랙박스' 공정이 많다. 이 때문에 실험실에서의 성공이 대량 생산 단계에서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지멘스의 디지털 트윈 기술과 엔비디아의 실시간 물리 시뮬레이션 모델인 '코스모스(Cosmos)'가 결합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핵융합 기업 커먼웰스퓨전시스템즈(CFS)가 '20년의 연구를 20개월로 단축' 논리는 바이오 공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존에는 수개월이 걸리던 배양 조건 최적화를 가상 공간에서 수만 번 시뮬레이션해 최적의 경로를 단 몇 주 만에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약 후보 물질이 나와도 생산 공정을 잡지 못해 상용화가 늦어지는 바이오산업의 고질적인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젠슨 황이 강조한 '피지컬 AI'는 바이오 제조 현장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바이오 의약품 제조에서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인간에 의한 '오염'과 '숙련도 차이'다. 중력과 마찰 등 물리 법칙을 학습한 AI 기반 로봇은 복잡한 바이오실험이나 배양기 관리를 인간보다 더 정교하고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엔비디아의 옴니버스(Omniverse)는 한마디로 물리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가상 세계를 만드는 캔버스이자 협업 플랫폼이다. 단순히 그래픽이 좋은 3D 환경을 넘어 중력, 마찰, 유체 흐름 등 현실의 물리 현상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의 핵심 기반이다. 옴니버스 환경에서 학습한 로봇이 지멘스의 자동화 설비 위에서 구동될 때, 바이오 공장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공정을 수정하는 '자율형 공장'으로 진화한다. 이는 고도의 청정도가 요구되는 첨단 재생의료 및 세포·유전자 치료제 생산에서 핵심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다.
바이오 스타트업들의 가장 큰 무덤은 실험실 단계의 성공이 상업적 규모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스밸리(Death Valley)'다. 지멘스의 공정 관리 데이터와 엔비디아의 AI는 미생물 설계 단계부터 대량 생산 시의 유체 역학적 변화를 미리 계산해 준다. 전통적인 바이오 제조가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펩시코(PepsiCo)가 지멘스와 엔비디아의 기술을 도입해 공정 생산성을 20% 높이고 자본 지출을 15% 절감한 사례는, 대규모 배양 탱크를 운영해야 하는 바이오 의약품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험실에서의 연구 개발된 세포를 활용한 대규모 제품생산이 단순한 연구를 넘어 실제 '산업화'로 이어지는 강력한 동력을 얻게 된 셈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CDMO)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멘스와 엔비디아가 설계하는 미래 제조 패러다임에서 우리가 하드웨어 시설인 '몸체' 역할에만 머문다면, 향후 제조 공정의 핵심 지능은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지멘스의 '도메인 데이터'와 엔비디아의 'AI 두뇌'가 결합하는 이 시점을 엄중히 보아야 한다. 한국의 강점인 제조 현장 데이터를 빠르게 디지털 자산화하고, 이를 분석할 AI 인프라를 국가적 차원에서 결합해야 한다. 세상은 결국 제조업이 승패를 결정짓는 시대로 회귀하고 있으며, 바이오 역시 '연구'를 넘어 '제조'의 영역에서 국가 경쟁력이 갈릴 것이다. 지멘스와 엔비디아의 동맹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대한민국 바이오는 '지능을 가진 강력한 몸체'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파운드리사업단 책임연구원·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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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