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146.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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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칼럼] 146.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5-12-04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보수의 뿌리는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것처럼 혁명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급진적 파괴에 대한 경계'입니다. 이렇게 보수는 강경하고 고집스러운 입장이 아니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보수의 핵심 가치를 몇 가지 짚어보면, 가장 먼저 보수란, 사회는 한 번에 바꿀 수 없고 "고장 난 부분은 고치되, 작동하는 질서는 훼손하지 않는다"라는 점진적 개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헌법과 의회, 가족과 공동체 같은 제도와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지요. 권리보다는 책임을 우선시하고 복지보다는 노동이나 의무를 더 강조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고 경제는 민간의 창의에 맡기는 시장 경제를 존중하지요. 이러한 배경에는 인간은 이기적이므로 인간에 대한 불완전성을 인식하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전 세계는 이념대립보다는 실용 경쟁으로 정치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보수가 구현하는 내용도 변하게 됩니다. 즉 자본 이동이 자유로워서 극단 정책이 불가능하고, 이미 기본 복지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급진적으로 축소하거나 확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극단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중산층의 입지가 커지고 있지요. 그리고 보수나 진보를 불문하고 AI, 고령화, 기후 위기는 공통된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보수는 복지를 수용하게 되고 진보는 시장을 인정하는 수렴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공화당은 보수적 입장이고 민주당은 진보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정책 영역에서는 수렴 현상을 보이지요. 공화당은 사회 보장이나 메디컬 케어는 폐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보호 무역이나 산업 보조금에 직접 개입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대기업을 인정하고 군사력 증강이나 반도체·국방 산업을 보호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정책 수렴의 대표적인 내용이지요. 이렇게 경제는 양 진영이 닮아가고 있으나, 감정은 더 갈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정치의 핵심적인 모순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보수나 진보 정권 모두 몇몇 정책은 공통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재벌 중심 성장, 부동산 중심 자산 구조, 반도체·배터리·방산 육성 등이 그것입니다. 경제 운영 방식은 보수나 진보 모두 큰 차별성이 없이, 국가 주도 혼합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심각합니다. 이념보다는 도덕이나 정체성 그리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갈등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친일 대 반일, 검찰 대 반검찰, 기득권 대 피해의식 등이 지역주의와 세대 갈등에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정책은 비슷한데 각각의 언어는 극단을 치닫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도 아니면서 이념적 장벽을 높이 쌓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는 정당은 보수인데 정책은 반보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보수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먼저 미국이나 한국 모두, 음모론과 혐오를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법치와 헌정 질서를 중시하고 절차를 지켜야 하지요. 한국에서 보수가 이런 음모론과 혐오에 기반하여 불법 비상계엄 선포의 주역이었다는 것은 보수의 가치를 크게 훼손한 것이지요. 이렇듯, 급진적인 '정서 정치'를 경계하고 장기적 안정과 세대 간 책임을 중시하는 세력이 되어야 진정한 보수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이 정책적 경쟁자가 아니라 '도덕적 악'이라고 규정하는 구도를 깨야 합니다.

요약하면, 보수는 전통·책임·점진적 개혁·제도의 존중인데, 최근에는 보수와 진보의 수렴 현상이 일어나 경제·복지·산업 정책에서 경계가 오히려 애매해졌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진정한 보수는 보수의 변화를 수용하고, 진보의 변화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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