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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그런데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 그리고 그것이 역설적 형태로 나타나는 관점을 균형 있게 설명한 학자는 리처드 랭엄 교수입니다.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인간은 공동체 내의 협력적 선과 집단 밖의 폭력적 악을 동시에 진화시킨 존재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인간은 단일하고 일관된 본성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선과 악 또는 미덕과 폭력성 같은 상반된 성향들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간은 단순히 '착하다'거나 '악하다'로 규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내재적 갈등이나 역설적 구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설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선과 악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만, 사실상 이 둘은 분리되었다기보다는 서로 얽혀 있고 때로는 미덕이 폭력성으로 전환되거나 폭력성이 미덕으로 변형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미덕을 수행하거나 미덕을 실천하는 삶을 추구할 때조차도 그 안에 잠재된 폭력성 또는 파괴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미덕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힘, 엄격성 혹은 강제성이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이 역설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랭엄 교수는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역설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그 역설을 해결하는 논리로 미덕과 폭력성의 미묘한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랭엄이 주장한 미덕과 폭력성의 미묘한 관계란 이 둘 사이가 단순히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정의나 자애와 같은 미덕이 실천되는 과정에서 강제나 제재 또는 징벌이라는 폭력적 요소가 동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상대를 억압하거나 제압하는 방식이 취해질 수 있으며, 이럴 때 미덕이 폭력성으로 뒤섞이는 역설이 생깁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미덕적인 목표가 있을 때, 그 진실을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고통을 강요하는 방식이 동원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폭력적인 힘 혹은 강제적 권력이 선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 정의를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논리는 외관상으로는 미덕적 목표를 지향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파괴적 힘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덕이 지나치게 견고하거나 엄격해질 때 오히려 폭력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모순이 존재합니다. 좋은 것이 지나치게 극단화되면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원리이지요.
이러한 관찰은 정치사상이나 심리학 등에서 매우 유용한 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현실에서 선한 의도라 불리는 행동 뒤에 강제적인 힘이나 권력의 작용이 있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랭엄은 미덕과 폭력성 사이를 선과 악의 단순 대비로만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 둘이 상호작용하고 때로는 서로 조건화하며, 또한 서로를 전환할 수 있다는 복합적인 시선을 제안한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저도 평소에 양면성, 나이와 성장, 자기 객관화 등의 주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인생의 4계절이나 나이 듦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나이가 들며 사랑과 책임감 등의 미덕이 커질 수 있지만 동시에 독선과 통제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역설을 많이 경험하지요. 여기서도 세상사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고집하기보다는 통합과 상호작용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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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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