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김안국과 한글 교화서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김안국과 한글 교화서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5-11-16 17:14
  • 신문게재 2025-11-17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교수
백낙천 교수
16세기는 조선의 성리학이 통치 이념으로 확고해지고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시기였다. 세조 때 공신 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훈구파는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따른 정국 혼란의 반동으로 새로운 신진 사대부의 중앙 정치 진출을 허용하게 되었으니 이들이 향촌을 세력 근거지로 한 사림파였다. 16세기 이후 사림파는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향약의 보급과 향촌 질서의 안정을 위해 유향소 설치를 주장하고, 과거제 방식이 아닌 천거제 방식을 통한 관료 충원인 현량과 실시 등의 정책들을 펼쳤다.

이를 통해 사림파는 성리학적 국가 질서를 확립하고 도학 정치를 실천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지위를 강화해 나갔다. 전자의 대표적인 학자가 조광조이고 후자의 대표적인 학자가 김안국이다. 즉, 조광조는 중앙 정치에서 훈구파들과 겨루면서 정치적 개혁을 꾀했다면, 김안국은 향촌에서 향약으로 일상생활의 윤리 규범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함으로써 성리학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조광조와 김안국은 김종직과 김굉필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적통을 계승한 인물로서 사림파의 선도자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이 중 김안국은 1478년(성종 9)에 태어나 26세 되던 해인 1503년(연산군 9)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중종반정 이후 본격적으로 중앙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숙청되고 이를 두둔한 김안국은 가까스로 죽음은 면했지만 파직되어 경기도 이천으로 낙향하여 지냈으며, 1537년(중종 32)에 복권되어 이후 예조판서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으며 1543년(중종 38)에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안국의 학문 활동에서 크게 주목되는 것은 그가 관찰사로 있으면서 향촌 교화에 힘을 쏟은 부분이다. 특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에 중종은 풍속을 교화시킬 것을 하교하였다. 이에 김안국은 경상도 지방의 사림 30여명을 천거하여 지방 사림이 등용되는 현량과 실시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향교의 유생들에게 『소학』 공부를 권면하고 그 보급에 힘썼다.



무엇보다 김안국의 학문에서 돋보이는 것은 성리학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일반 백성들에게 유교의 덕목과 윤리를 가르쳐 민심과 풍속을 순화하기 위해 교화서를 간행한 일이다. 그는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장유(長幼)와 붕우(朋友) 곧 이륜의 행실이 뛰어난 사람 48명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려 언해한 『이륜행실도』를 간행하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덕과 선을 권하고 악을 경계하여 도덕심을 함양하는 데에 지켜야 할 덕목과 규범을 정한 『여씨향약』을 번역하여 『여씨향약언해』와 향촌 백성들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정속언해』 등의 교화서를 간행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나아가 김안국은 중종의 명을 받아 온역(돌림병)을 치료하는 방문을 모아 『본문온역이해방언해』를 간행하였으며, 그 외에도 전하지는 않지만 농서나 잠서 등을 언해하여 간행하였다. 즉, 김안국은 성리학만 학구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향약을 통해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사람이었고 농학과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천문과 병법 외에도 종이 제작법도 개발할 정도로 이론과 실제에 다재다능한 위인이었다.

특히, 김안국은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 중에 향촌 사회의 교화를 위해 『이륜행실도』를 편찬하면서 장유유서와 붕우유신을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 향촌 사회에서도 필요한 윤리임을 강조하였다. 즉, 『이륜행실도』에서 구현된 장유와 붕우의 윤리에는 혈연과 지연을 넘고 학문을 매개로 한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혁신적인 윤리의 지향은 『여씨향약언해』의 간행으로 경상도에서 시행된 지 2년 만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까지 확대 시행되었으니 공동체의 사회적 질서와 관계가 국가에 의한 정책이 아닌 김안국을 중심으로 추진되었을 정도로 김안국은 당시 많은 사림 제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김안국의 향촌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적 실천은 이언적, 이황, 김인후 등으로 이어지면서 훗날 영남학파의 근간을 마련케 하였으며, 특히 이황이 서원을 중심으로 학문을 연마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기반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안국은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을 실천한 유학자였으며, 일반 백성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아 한글 교화서를 간행한 계몽가였으며, 과학 기술에도 비상한 지식을 가진 경세치용의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3. 햇잎푸드, 100만불 정부 수출의 탑 수상... "대전을 넘어 전 세계로"
  4.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5. 국제디지털자산위, 필리선 바타안서 'PPP 개발 프로젝트 밋업' 연다
  1.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2. 천안문화재단, 2026년 '찾아가는 미술관' 참여기관 모집
  3. 백석대, 천호지 청춘광장서 청년·시민 협력 축제 성료
  4. 단국대병원, 2025년 감염병 대응 유공기관 선정
  5. 상명대 창업지원센터장, '창업보육인의 날' 기념 충남도지사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