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나는 매일 자연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자연의 아이들을 만난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나는 매일 자연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자연의 아이들을 만난다

김혜선 나성유치원 교사

  • 승인 2025-09-26 09:59
  • 신문게재 2025-09-26 18면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나성유 김혜선 선생님 (1)
김혜선 나성유치원 교사
'나는 매일 자연으로 출근한다'라는 말은 매일의 출근길에 내게 되뇌는 말이다.

생태와 그림책을 주제로 수행한 연구년제를 마치고 복직한 근무지가 지금의 생태유치원이다. 감사하게도 자연·인간·관계·순환에 대한 연구과제를 교육과정으로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근무지를 이동하고 적응해야 하는 타 교사들처럼 나 역시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필요했다. 손 내미는 동료들과 학급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유치원이 생태 환경에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감사함이 더해져 행복해졌다.

우리 유치원 마당에는 큰 텃밭과 높다란 흙산이 있다. 가까이에는 제천이 흐르고, 영차영차 북돋우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여러 공원과 숲이 있다. 무엇보다 유치원 마당에 텃논과 화덕이 있다. 텃논이 있어 매년 아이들과 함께 모를 심고 벼를 수확한다. 텃밭과 텃논에서 가꾸고 수확한 것은 화덕을 활용해 요리도 하고, 단오 때는 창포물을 삼아 전체 아이들이 부드러운 머릿결이 되도록 머리 감기도 한다.

'찰칵찰칵' 매일 아침 나의 출근길에 들리는 소리다. 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텃논의 사진을 매일 찍는다. 높다란 아파트 도심 속에서 푸릇하게 자라나는 초록 모들을 보며 마음이 저절로 힐링된다. 매일 쑥쑥 크는 우리 아이들처럼 자라나는 모의 키도 재고 그림도 그리고, 논에 사는 생물도 관찰한다. 급식실에서는 나도 우리 반 아이들도 점심때마다 텃논에 찾아오는 까치·까마귀·참새 등 여러 새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우와 새 왔다.' , ' 2마리야. 아니야, 저기 한마디 또 있어.'라고 말하며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찾아온 새의 수를 세며 우리가 만든 자연환경 '텃논'에 놀러 온, 원래 자연 속 주인들을 반가워한다. 하지만 곧 벼알이 맺히고 그것을 쪼아먹는 새의 방문을 아이들이 그때도 반길지는 모르겠다. '새야, 우리 아이들이 안 볼 때, 조금만 그리고 맛있게 먹고 가렴"하고 말을 걸어본다. 얼마 전 옆 반 친구들은 교실에서 부화시킨 개구리 '몽실'이를 텃논에 방생했다. 그래서 텃논에 새가 찾아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본다. 나 역시 걱정은 되지만, 얼마 전 아이들과 텃논 주변을 뛰어놀며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몽실'이 소리라고 믿어본다.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를 화덕에 삶고 전체 학급이 마당에 나와 알록달록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 · 겨울 요리 활동 김장 후 화덕에 삶은 수육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장작불을 지펴 감자와 옥수수, 수육을 삶아내려고 고생하는 교직원들과 학부모님들의 모습에서 하나가 됨을 느낀다. 우리 유치원 공동체가 하나 됨을 느끼는 건 교사인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여름 절기 '소만' 때 아이들과 모내기를 끝낸 며칠 후, 쌀을 활용하여 요리실에서 밥 전을 만들었다. 밥 전은 "조리사 선생님들은 매일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시잖아요. 우리도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대접하고 싶어요"라는 우리 반 아이들의 요청으로 만들게 되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밥 전을 유치원에 계시는 여러분께 드린 후 함께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우리 반의 가장 어린 여자아이가 "선생님,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 가족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밥 전의 향기와 맛 그리고 나눠 먹는 행복이 배가 되는 그 순간, 아이들도 교사도 모두가 함께라는 기분이 서로에게 와 닿은 것 같았다.

올해 선생님들과 생태교육과정을 담은 책 출판을 준비 중이다. 방학 기간에도 자료를 공유하며 집필에 여념이 없는 동료들과 함께 리처드 루브의 책 제목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 아닌 "자연에 가까워진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도록 조력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힘차게 자연으로 출근한다. /김혜선 나성유치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내방] 구연희 세종시교육청 부교육감
  2.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6년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 접수 시작
  3.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4. 재난위기가정 새출발… 희망브리지 전남 고흥에 첫 '세이프티하우스' 완공
  5. 세종시 빛축제, 시민 힘으로 다시 밝힌다
  1. 수능 앞 간절한 기도
  2. 김진명 작가 '세종의 나라'에 시민 목소리 담는다
  3. 세종 '행복누림터 방과후교육' 순항… 학부모 97% "좋아요"
  4. 고물가에 대전권 대학 학식 가격도 인상 움직임…학생 식비부담 커질라
  5. [한 장, 두 장 그리고 성장] 책을 읽으며 사람을 잇고 미래를 열다

헤드라인 뉴스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80년이 지났고,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은 이제 전쟁유적뿐이죠. 그래서 보문산 지하호가 일본군 총사령부의 것이었는지 규명하는 게 중요합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시즈야(48) 서울지국장은 5일 대전 중구 보문산에 있는 동굴형 수족관 대전아쿠아리움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두고 용산에 있던 일본군 총사령부를 대전에 있는 공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올해 고1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 학기를 경험한 응답자 중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들은 진로 탐색보다 대학입시 유불리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4.3%, '매우 만족한다'는..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 수능 앞 간절한 기도 수능 앞 간절한 기도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