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건축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 전국
  • 수도권

[기고] AI 시대, 건축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AI를 활용해 사고의 폭 넓히고
스스로 새로운 대안 창출 힘 길러야

  • 승인 2025-09-17 11:44
  • 수정 2025-09-17 12:15
  • 주관철 기자주관철 기자
증명사진(박경준)
한국폴리텍Ⅱ대학 인천캠퍼스 건축설계과 박경준 교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과 스튜디오는 밤을 지새우는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다듬기 위해 새벽까지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곤 했다. '밤샘 작업'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낭만이자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 과정속에서 학생들은 도시 문제에 대한 건축적 해결 능력을 기르며 건축가로 성장해 갔다. 고단함 속에서도 축적된 경험은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었고, 이는 단순히 결과물 완성에 그치지 않고 건축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갖춘 건축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디지털 설계 도구와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의 보급으로 설계 과정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학생들은 과제를 시작하자마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열어 사례를 조사하고, 다양한 공간 구성을 비교하며, 때로는 디자인 방향까지 조언을 받는다. 이제는 더 이상 밤샘으로 노력을 증명하는 대신, 문제에 대한 신속한 대안 마련과 결과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냈다고 해서 사고의 깊이까지 함께 성장했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생산을 넘어, 도시의 맥락을 이해하고 인간 삶의 가치를 해석하며, 다양한 요구와 의미를 논리적이면서도 심미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고차원적 지적 활동이다. 반면,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할 수는 있지만 도시의 역사와 공간 경험을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축적된 패턴에 기반한 답변은 결과물의 획일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 지점에서 건축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아이디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의 사고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AI를 활용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단순히 결과물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사고 능력을 중시하는 과정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다양한 대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대안이 나왔는지, 그것이 실제 맥락에 맞는지,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반영하는지 분석하고 검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또한 건축의 본질을 지켜내는 교육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건축은 언제나 도시의 역사와 맥락 속에서 태어난다. 특정 장소의 사회적 배경, 축적된 기억, 인간의 공간 경험은 디지털 데이터로 일원화 하여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성 영역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이러한 맥락을 읽어내고, 설계의 방향과 의미를 스스로 선택하는 가치 판단 능력을 지녀야 한다. 이 능력은 어떠한 도구로도 대체될 수 없으며, 건축가라는 직업의 핵심 자질로 남아야 한다.

결국 건축교육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AI를 단순히 '빠른 결과물 생산기'로 전락시키지 않고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로 길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도시와 인간, 공간을 이해하는 건축의 본질적 교육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효율성과 깊이가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AI 시대의 건축교육은 배척도, 무비판적 수용도 아니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활용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맥락 해석과 가치 판단을 중심으로 깊이를 더하는 과정 중심 교육.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축교육의 미래다. 한국폴리텍Ⅱ대학 인천캠퍼스 건축설계과 박경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세계백화점 앞 10중 추돌사고… 16명 사상
  2. 천안시, 11월 '단풍' 주제로 모바일 스탬프투어 운영
  3. 남서울대, '제5회 국제 한국어 말하기 대회' 개최
  4. 천안법원, 교통사고 후 허위 진술로 범인도피 도모한 연인에게 '철퇴'
  5. 천안법원, 투자자 기망한 60대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자 '징역 2년 8월'
  1. 한기대 '신기술.첨단산업분야 인재양성 콘퍼런스' 개최
  2. 순천향대천안병원, 충남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심포지엄 성료
  3. 천안시, 지역사회치매협의체 회의 개최
  4. 백석대, 한·일 노인복지 현장교류 프로그램 개최...초고령사회를 넘어 미래로
  5. 임정주 충남경찰청장, 해바라기센터 등 방문… 직원 격려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돌입…한화볼파크 계약 행정 실효성 부족 도마 위

대전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돌입…한화볼파크 계약 행정 실효성 부족 도마 위

대전시의회가 시정 전반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 돌입한 가운데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신구장인 대전한화생명볼파크 계약 구조와 행정 효율성 부족, 산업정책 추진력 저하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장 먼저 대전한화생명볼파크의 사용·수익허가 계약이 공공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불균형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7일 열린 제291회 제2차 정례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복지환경위원회 소속 박종선 의원(국민의힘·유성1)은 "대전시와 한화이글스가 체결한 야구장 사용·수익허가 계약서에서 관리 주체와 범위가 불명확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그는 "야구장의 직접..

국민의힘 대전시당, 논평전 강화 시도 눈길… 지선 앞 여론전 선점?
국민의힘 대전시당, 논평전 강화 시도 눈길… 지선 앞 여론전 선점?

국민의힘 대전시당이 이은권 위원장 체제 전환 후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주요 인사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 여론전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데, 전임 대변인단 때와 달리 현안별 세심한 대응과 공당 논평에 맞는 무게감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국민의힘 대전시당은 7~8일 민주당 박정현 대전시당위원장과 허태정 전 대전시장을 겨냥한 논평을 냈다. 날짜별론 7일에 2개, 8일에 1개의 논평이 나갔다. 우선 박 위원장을 향해선 특정 국가나 국민 등 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

"광역교통망 수도권 빨대 효과 경계…지역주도 시급"
"광역교통망 수도권 빨대 효과 경계…지역주도 시급"

지역 정부가 지역소멸 우려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초광역권(5극 3특)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충청광역급행철도(CTX) 등 광역교통망 구축에서 수도권 빨대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충청권은 국토 중심에 있어 광역교통망 구축에 유리하지만, 수도권에 인접해 자칫 지역 자원이 수도권으로 빨려들어 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광역교통망을 지역 주도형으로 구축 균형발전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전시와 대전연구원 주최로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열린 '2025 대전 정책엑스포'의 '새 정부 균형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

  •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