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스승의 한마디, 제자의 인생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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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스승의 한마디, 제자의 인생을 바꾸다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 승인 2025-09-16 16:23
  • 신문게재 2025-09-17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민병찬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얼마 전 한 제자가 공인회계사 국가시험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산업경영공학을 전공한 그가 전혀 다른 길에 도전해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합격의 기쁨을 넘어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지닌 힘을 다시 깨닫게 했다. 그의 출발점은 군 복무 시절이었다. 생활관에서 동료가 훈련을 마치고도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싹텄다. 휴가 중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선생님,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 보려 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그 말은 가벼운 덕담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으며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 후 국가 연구소와 대학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나의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나는 늘 강조했다. "도전은 쉽지 않기에 가치가 있다. 학문은 남을 이기려는 경쟁이 아니라, 남과 다른 길을 내는 데 의미가 있다." 그는 방학이면 연구실을 찾아와 흔들림과 다짐 사이를 오갔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진심을 읽었다. 내가 새벽까지 실험과 자료 분석에 몰두하던 순간들을 그는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훗날 그는 말했다. "선생님처럼 학문에 열정을 다하는 삶을 언젠가 나도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스승의 땀과 태도가 교과서보다 강한 메시지가 되어, 제자의 결심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제대 후 그는 서울의 고시반에 등록하며 "3년 안에 반드시 합격해 영광을 스승께 돌리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학기마다 작은 장학금으로 그의 도전을 응원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좌절과 흔들림의 고비가 몇 차례 있었고, 합격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약속을 지켜냈다. 연구실에서 함께 보낸 시간, 주고받은 짧은 격려, 실패를 견디는 법을 배우며 쌓은 내공이 그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냈다. 지금 그는 졸업까지 두 학기를 남겨 두고, 차분하게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성취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모님의 헌신, 스승의 믿음, 친구들의 격려가 더해졌고, 무엇보다 제자 자신의 간절함이 끝내 문을 열었다. 교육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커다란 가르침보다 때로는 짧은 한마디, 성실한 태도, 실패를 대하는 방식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논어에는 '三人行 必有我師焉(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과 '敎學相長(가르치며 배우고, 배우며 함께 자란다)'라는 구절이 실려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배우고, 제자는 스승을 통해 자란다. 이번 경험은 고전의 문장이 오늘에도 생생한 진리임을 보여준다. '스승은 제자를 잘 만나야 하고, 제자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추상적 격언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스승의 한마디는 제자에게 평생의 용기가 되고, 제자의 성취는 스승에게 교육의 의미를 다시 일깨운다.

오늘의 청년들은 불확실성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쉽게 지친다. 그러나 목표를 간절히 품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전공과 출발점이 달라도 새로운 길은 언제든 열린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앞서느냐가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가느냐이다. 그 길을 곁에서 지켜보며 묵묵히 응원해 주는 스승과 가족, 동료가 있다면, 도전의 과정은 덜 외롭고 더 단단해진다.



덧붙여,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도전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하려면 실력과 성실이 제대로 보상받는 공정한 제도,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대학과 연구실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교수의 한 줄 피드백, 선배의 경험 공유, 장학금과 멘토링 같은 작은 장치들이 한 사람의 궤도를 바꾼다. 교육은 결국 생태계의 문제이며, 한 교실에서 시작된 변화가 공동체 전체로 퍼질 때 비로소 지속된다.

오늘도 나는 연구실의 불을 조금 더 늦게 끄려 한다. 언젠가 또 다른 제자가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그가 걸어나갈 길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되기 위해, 스승인 나부터 다시 배움의 자세를 다잡는다. 교육은 지식을 전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일이다.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여전히 간명하다. "도전은 쉽지 않기에 가치가 있다. 간절한 꿈을 품고 나아가라.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줄 스승과 동료를 소중히 하라." 그러면 불가능은 가능하고, 좌절은 더 큰 도약의 밑거름이 된다.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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