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135. 코미디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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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칼럼] 135. 코미디의 양면성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5-09-11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요즘 세태를 가리켜 '세상은 코미디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국인 상당수의 지지를 받고, 세계의 정치나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트럼프의 언행을 보면 한 마디로 '코미디' 같습니다. 우리 정치에서도 지도자들이 내뱉는 품격을 잃은 말은 일종의 코미디 수준입니다. 코미디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다양하지만, 일상적인 의미는 우스꽝스럽거나 웃음을 주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 정치인들의 언행을 코미디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코미디의 어원이나 그 의미를 파고 들어가면 단순한 '웃음' 이상의 것이지요.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의 권유로 단테의 '신곡'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단테의 '신곡'의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La Divina Commedia'인데 영어로는 'The Divine Comedy'입니다. 원래는 '코메디아'라고만 불렀는데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그 앞에 Divina(신성한)라는 수식어가 붙어 'La Divina Commedia'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단테가 책의 제목으로 코미디라는 용어를 택한 이유는 중세 문학 이론에서 코미디는 비참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희망적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곡'은 지옥의 절망에서 시작해서 천국의 구원과 행복으로 마무리되는, 즉 비극에서 시작해서 행복한 결말로 나아간다는 것이 코미디의 정의에 맞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코미디라는 말은 흔히 웃음을 자아내는 공연이나 유머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지만, 이 단어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면 단순한 웃음 이상의 함의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위에서 얘기한 단테 불후의 서사시 '신곡'에서 코미디라는 명칭이 사용된 배경은 고대 그리스적 어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비극과 희극이라는 두 문학 양식의 대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테가 어둠과 절망에서 시작해 연옥을 지나 결국 천국의 빛과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었다면, 비극으로 시작해서 행복한 결말이라는 고대적인 희극의 정의에 부합한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고난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인간사의 구조를 상징하는 것이며, 단테는 바로 자신의 여정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정의함으로써 지옥의 어둠을 지나 천국의 빛으로 나아가는 인간 영혼의 구원 서사를 드러낸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 정치인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코미디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단테가 시도한 코미디는 고통이나 비극에서 시작해서 행복이나 희극으로 결말을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현 세태가 진정 코미디였으면 좋겠습니다. 코미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신곡'에는 웃기는 얘기는 없고, 연옥에서 고통받는 장면만 나오는데 왜 코미디라고 했을까요? 제 중학교 동창 친구가 권고한 EBS 특별 기획으로 발표된 연세대 김상근 교수의 단테의 '신곡' 읽기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제기되었기에 김 교수의 설명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김상근 교수는 <신곡>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지옥이나 연옥에서 바라보는 것은 '별'이라고 설명하였으며, 이 별은 바로 '희망'인 것입니다. 지옥이나 연옥의 입구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지만, 그곳의 끝에서는 별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강조합니다. 지금은 지옥이나 연옥에서 고통을 느낄지라도 별을 우러러보며 가다 보면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가 현재 상황을 '헬조선'이라고 하지만,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영광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정치인들의 코미디 같은 언행도 이것이 바로 희망으로 가는 여정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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