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다문화] 국경을 넘은 사랑, 예술로 이어진 인연

  • 다문화신문
  • 금산

[금산다문화] 국경을 넘은 사랑, 예술로 이어진 인연

이중섭 화가와 일본인 아내 이남덕 여사의 이야기

  • 승인 2025-09-14 11:28
  • 신문게재 2025-01-04 30면
  • 충남다문화뉴스 기자충남다문화뉴스 기자
오늘날 한국에는 약 40만 가량의 다문화 가정이 존재하며, 그중에서도 한국-일본 국제결혼 가정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을 더듬어 올라가면,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사랑과 예술로 국경을 넘은 한 부부의 이야기에 닿는다. 바로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중섭(1916~1956) 화가와 그의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한국명 이남덕)이다.

이중섭 화가에게는 그의 예술혼을 불태우게 한 영원한 뮤즈이자 반려자가 있었다. 바로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여사이다. 그녀는 이중섭이 직접 지어준 한국 이름 '이남덕(李南德)'으로도 알려져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만난 덕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36년 일본 도쿄의 문화학원 미술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유학 중이던 이중섭은 동문인 마사코를 만나 사랑을 키웠고, 1945년 5월 해방 직후 고향인 원산에서 전통 혼례를 올리며 부부가 되었다. 짧지만 행복했던 신혼 시절, 이남덕 여사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정착해 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족은 남한으로 피난했고, 전쟁과 생활고 속에 1952년 이남덕 여사는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양국의 외교 관계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통해서야 공식적으로 수립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웠고, 특히 개인적인 방문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은 1953년 부산항에서 부두 노동을 하며 어렵게 번 돈으로 선원증을 마련해 단 한 차례 일본의 처갓집을 방문했다. 국교가 없던 시절, 그가 일본을 찾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선원증으로는 오래 머물 수 없어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짧은 만남은 그의 가족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간절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부산, 통영, 대구, 서울 등을 떠돌며 극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은지화'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는 가족, 소, 닭, 어린이 등 따뜻한 향토적이고 동화적인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전적 감성이 깊이 배어 있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중섭은 거식증과 정신적 증세에 시달리며 1956년 9월 6일, 간염으로 홀로 생을 마감했다. 불과 41세의 젊은 나이였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의 시신과 밀린 병원비 청구서만이 남아 있었다는 일화는 그의 비극적인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중섭과 이남덕 여사는 한국에서 약 7년간의 시간을 함께했지만, 이남덕 여사는 남편 사후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를 그리워하며 살아갔다. 국교가 없던 시절, 서로를 만나기 어려웠던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살아갔다.

2022년 8월, 100세가 넘는 나이로 별세한 그녀는 생전에도 남편 이중섭의 예술혼과 삶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헌신하며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작품을 보존하고, 한국 미술계와 연구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며, 남편의 예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힘썼다.

이중섭과 이남덕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족애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아사오까 리에 (일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지역 9개 대학 한자리에… 대전 유학생한마음대회 개최
  2.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3. "광역교통망 수도권 빨대 효과 경계…지역주도 시급"
  4. [건강]대전충남 암 사망자 3위 '대장암' 침묵의 발병 예방하려면…
  5. 태권도 무덕관 창립 80주년 기념식
  1. 대청호 녹조 가을철 더 매섭다…기상이변 직접 영향권 분석
  2. [대입+] 2026 수능도 ‘미적분·언어와 매체’ 유리… 5년째 선택과목 유불리 여전
  3. 대전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돌입…한화볼파크 계약 행정 실효성 부족 도마 위
  4. [편집국에서]배제의 공간과 텅빈 객석으로 포위된 세월호
  5. [홍석환의 3분 경영] 친구의 빈소에서

헤드라인 뉴스


조선선박 600년만에 뭍으로… ‘태안 마도4호선’ 인양 완료

조선선박 600년만에 뭍으로… ‘태안 마도4호선’ 인양 완료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현존 유일의 조선시대 선박이 '마도4호선'이 600여 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태안 마도 해역에 마도4호선의 선체 인양 작업을 진행해 지난달 완료했다고 10일 밝혔다. 마도4호선은 10년 전인 2015년 처음 발견됐으나 보존 처리를 위해 다시 바닷속에 매몰했다가 10년 만에 인양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선박은 15세기 초에 제작된 조운선(세곡 운반선)으로, 전라도 나주에서 세곡과 공물을 싣고 한양 광흥창으로 향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꽃축제, 대전 하늘에 수놓는다"...30일 밤 빛의 향연
"불꽃축제, 대전 하늘에 수놓는다"...30일 밤 빛의 향연

이장우 대전시장은 10일 주재한 주간업무회의에서 한화 불꽃축제 개최의 안전대책과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확대, 예산 효율화 등을 지시했다. 이 시장은 대전시 한화 불꽃축제 개최와 관련해 "축제 방문자 예측을 보다 넉넉히 잡아 대비해야 한다"며 "예측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몰리면 안전과 교통에 있어 대책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화구단은 30일 한화이글스 창단 40주년과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념해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및 엑스포다리 일원에서 불꽃축제를 개최한다. 불꽃놀이와 드론쇼 등 대규모 불꽃 향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 시장은..

[대전 유학생한마음 대회] "코리안 드림을 향해…웅크린 몸과 마음이 활짝"
[대전 유학생한마음 대회] "코리안 드림을 향해…웅크린 몸과 마음이 활짝"

8일 대전시사회서비스원이 주최한 2025년 제9회 대전 유학생 한마음 대회를 방문했다. 대전 서구 KT인재개발원 실내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마주한 건 엄청난 활기였다. 제기차기, 딱지치기, 투호 등의 한국 전통 놀이를 850명 가까운 유학생들이 모여 열중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아쉬움의 탄성, 그리고 땀과 흥분으로 데워진 공기에 늦가을의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끈 달아오른 공기는 식을 틈이 없었다. 이어진 단체 경기, 그중에서도 장애물 이어달리기는 말 그대로 국제 올림픽의 현장이었다. 호루라기가 울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 ‘보행자 우선! 함께하는 교통문화 만들어요’ ‘보행자 우선! 함께하는 교통문화 만들어요’

  •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수험생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 ‘황톳길 밟으며 가을을 걷다’…2025 계족산 황톳길 걷기대회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