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날아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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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날아간 꿈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08-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초중고시절 모두 함께 그림 그리던 지기지우가 있었다. 재능이 남달랐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이유로 진학을 포기한다. 두어 해 지나, 시골에 있는 그의 집 근처 논두렁에서 만났다. 하던 일 멈추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뜬금없이 토끼 사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50년 전 일로 기억에 의존한 것이니 사실과 다를 수 있다. 단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도입이다.

기르는 것은 렉스토끼로, 모피사용을 위해 개발된 신품종이란다. 털이 곱슬거리며 부드럽고 고와서 품질이 밍크이상으로 좋아 각광받을 것이란 주장이다. 모피 한 개당 1만 원씩 공급업체가 전매해 준다는 것이다. 우선 새끼 두 쌍, 어미 한 쌍을 60만 원에 구입했단다. 사립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20만 원도 채 안 되었던 당시로선 꽤 많은 돈이다.

토끼는 포유류 중 쥐 다음으로 번식력이 강하다. 한 번에 십 수 마리까지 임신 하며 30일 만에 출산한다. 20여일이면 독립이, 반년이면 짝짓기가 가능하다.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듣기에 꽤 꼼꼼히 고려하고 실패율까지 산입했다고 한다. 2년 6개월 후면 월 5000마리 씩 출고가 가능해 진단다. 월 5000만 원씩 수입이 발생하는 것이다. 식용판매는 별개라서 사육 설비나 사료, 인건비를 고려해도 엄청난 수익이다. 꿈에 부푼 그의 입은 신바람이 났다. 얼핏, 분양가를 높이기 위한 과장 광고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하였으나, 시작하는 마당에 쪽박을 깰 수도 없어 진지하게 듣기만 했다.

호주의 토끼 전쟁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번식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595년 호주로 이민한 농부가 사냥용으로 풀어놓은 24마리의 짐승이 있었다. 토끼와 꿩, 자고새, 지빠귀 등이었다. 그 중 토끼는 정착해 있던 토끼와 교배하여 슈퍼 토끼가 탄생되었고, 어마어마한 번식력으로 이후 개체수가 수십억 마리가 넘었다 한다. 360도를 살필 수 있는 눈과 잽싸고 기민한 방향전환, 속도 때문에 잘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영리하기 때문이다. 3개의 굴을 파, 서로 연결시켜 놓음(狡?三窟)으로서 위험을 피한다. 번식력과 생존력이 강한 토끼로 인하여 호주에만 서식하던 토착종의 개체 수는 눈에 띄게 줄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가 된다. 식물이나 나뭇잎, 나무 밑동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군까지 동원하고 각종 수단을 강구했지만 박멸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위험수위에 가깝도록 개체수가 많다고 한다.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1960년대엔 토끼 사육이 장려되기도 한다. 시골 집집마다 키우는가 하면, 학교에서 당번을 두고 키우기도 한다. 귀여운 용모에 용돈 벌이도 되고 정서안정,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사육하기가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편식이 심하고 습기나 추위에 약하다. 발바닥이 연약하여 딱딱하거나 거친 바닥에 상처를 입기 쉽다. 광합성을 못하면 죽기도 한다. 토끼뿐인가, 어떤 생명체도 키우기가 쉽지 않다.

겨울방학 때 만나 물어보니 모두 죽었다 한다. 대화 나누었던 직후 여름 장마에 몰사한 모양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허망하였을까? 변변한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운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천재지변, 예측불허에 따른 실패도 있으나 대부분은 인위적 실패다. 자신감은 좋지만 맹목적 오만은 피해야 한다. 재기란 대단히 어렵다. 차 마시다 잠깐 넘겨다 본 영상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기에,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을 적어본 것이다.

꿈을 가지라고 배우지만, 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효용성, 시장성, 규모, 변화에 대한 정확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안목을 갖기 위해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나날이 발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다. 매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취사선택 폭의 확장수단이기도 하다. 공부와 역량이 부족하면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그를 바탕으로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하고, 모든 것이 결정, 준비되면 열정적으로 실천에 나서야 한다. 성실한 실천궁행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세상사다. 계산대로 되는 일도 대단히 드물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주영 회장같이 실패를 시련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윈스턴 처칠의 경우 성공의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헨리 포드처럼 더 똑똑하게 시작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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