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구윤리의 본질을 호도하는 '이진숙 후보 논란'

  • 오피니언
  • 여론광장

[기고] 연구윤리의 본질을 호도하는 '이진숙 후보 논란'

전준/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 승인 2025-07-10 21:00
  • 수정 2025-07-10 21:1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연구윤리는 전 세계적으로 연구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 중 하나이다. 연구윤리 위반 행위, 즉, 연구부정(plagiarism) 행위는 '표절'이라는 표현으로 오역되며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키곤 한다. 연구부정에는 표절 뿐 아니라, 연구 결과물의 성과를 기여자들이 공정하게 나누었는지의 여부, 실제로 재현 가능한 데이터가 활용되었는지의 여부 등 광범위한 기준들이 적용된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은 각각 자신의 학문 분야와 학술지의 특성, 더 나아가 소속 연구기관의 윤리 정책에 의거하여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연구윤리의 본질적 목표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객체와 연구 수행자, 더 나아가 학문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생명과학에서는 연구에 사용되는 생물 시료를 윤리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정해져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수의 학술지들 뿐 아니라 주요 대학들도 연구 성과를 연구자들끼리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성문화된 기준과 각 연구자들의 도덕적 판단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평가되며, 납득할 만한 기준에 의해 그 공로가 개개인에게 분배되는 건강한 학문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윤리가 중요한 만큼이나 연구부정 여부를 가리는 일은 매우 정교한 판단을 요구한다. 가령, 하버드 대학의 연구윤리 강령을 살펴 보면, 연구 성과물의 저자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연구팀 사이의 긴밀한 토의를 거쳐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연구 책임자, 즉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중재하며, 자신을 포함하여 가장 큰 기여를 한 연구자에게 제 1저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 외의 연구자들에게 공동저자 및 교신저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



2021년 사이언스 지에 출판된 칼럼에 따르면, 논문 저자 결정 방법에 대한 단일한 원칙은 없다. 왜냐하면 연구자의 학문 분야, 국가, 기관, 그리고 커리어 단계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다양한 상황을 완전하게 아우를 수 있는 법칙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본질적인 대원칙은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연구자들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학문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목적 하에, 그 기여도의 정도에 따라 투명하고 정의롭게 저자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는 과학자 집단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사안이며, 이에 대해 마치 천편일률적인 원칙이 있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현재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연구윤리 논란은 연구부정행위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첫째, 제자의 학위논문이 추후 출간된 학술 논문과 유사하거나 일치한다는 의혹은 근거 없는 문제 제기이다. 가령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 출판사는 연구윤리 항목에 "대학의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원고로 투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학위논문은 본질적으로 대학 내부에 갇혀 있는 '미출간 원고'인 것이며, 오히려 이를 전 세계의 학문장에 공개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아 게재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출판된 원고의 저자의 순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연구팀이 자율성을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다. 많은 경우 학위논문의 지도교수는 '교신 저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지도교수가 논문 작성에 실질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면 연구팀의 숙고를 거쳐 제 1저자가 되는 사례도 매우 많다.

가령 202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캐롤린 버토지는 연구팀에서 출원한 미국 특허에 제 1저자로 수십 번 이름을 올렸고, 202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맥밀런도 2001년에 미국 화학회지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한 논문을 포함하여 수많은 주요 출간물과 특허 들에서 대학원생 대신 제 1저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셋째, 한국어로 작성한 한 논문이 AI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문제 제기 또한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국어로 쓰인 논문에 대해 AI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매우 불확실한 것이 기술적인 현실이며, 더 나아가 인공지능 특유의 환각현상이 논문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연구윤리는 연구자와 더불어 학술장 공동체를 공고하게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가치이다.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만큼 정교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타인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 복사하여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등 그야말로 명백한 연구부정이 허다하다는 점은 씁쓸한 일이지만, 명확한 근거 없이 연구부정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애석한 일이다. 연구부정을 경계하는 것은 학술연구 역량, 더 나아가 국가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부정확한 의혹으로 인해 정치권의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때다.

전준/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3.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