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전환점의 도시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전환점의 도시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건축가

  • 승인 2025-06-26 16:42
  • 신문게재 2025-06-27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병윤 전 대전대 디자인아트대학장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건축가
'인간답게 사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윌리엄 모리스의 '이상향에서의 편지 -News from Nowhere'는 19세기 말 당시 영국의 산업화 사회 한복판에서 쓰인 소설이며, '어디에도 없는 소식'이란 반어적 의미도 지닌 절망의 시대가 만들어 낸 가장 급진적인 희망을 상상 한 메시지였다. 무미건조한 도시에 던진 모리스의 질문은 한편의 소설이었지만 변화를 원하는 세상에 불을 지폈다. 모리스에 의해 우리가 오늘날 '집'이라 부르게 된 계기의 '붉은 집 Red house'과 바르는 벽지가 탄생하였고 공산품이 아닌 수제품이 재 등장하였다. 영국의 '예술공예운동 Art and craft movement' 에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 등, 그야말로 전 유럽에 폭발적으로 '모던'이라는 근대문화의 대 지각변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한편 어색한 신조어들도 많아졌다. '삼포 N포' 등 부정적 절망을 내포한 말들이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노웨어'로 시작하는 19세기 모리스의 상상을 다시 불러볼 만하다.



산업혁명으로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해서 도시화는 예상 밖으로 삶을 조각내었으며, 빈부 차이도 늘었다. 인간의 감성과 존엄을 파괴하는 기계화된 세상에서 찾은 모리스의 메시지 'News from Nowhere'는 강제된 노동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그렸고 그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예술처럼 일하고,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거라 상상하였다. 이 모리스의 꿈은 예상과 달리 두 개의 다른 현실이 되었다.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 되어야 한다'라는 모리스의 말은 한편으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꿈꾼 사회주의 운동에 기름을 부어 상상하기 싫은 세상이 태동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한다'는 예술운동으로 확대되어 근대문화의 대변혁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 내었다. 선택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모리스의 이상도시 상상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갖는다.



구조에 갇힌 세대, 21세기 청년들은 겉보기엔 더 많은 자유와 선택지를 가진 듯 보이지만 경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조금씩 포기에서 안정을 찾는다.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도 단지 의욕 부족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없는 구조에서 등장한다. 우리는 19세기의 산업사회에서 기계가 인간을 집어삼키는 구조와 얼핏 유사하게 오늘날 데이터와 알고리즘, 효율과 성장이라는 이름의 구조로 사람의 삶이 통제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신용카드나 암호화폐 등은 유토피아 소설 속에서 이미 다 상상한 것들이지만 AI는 우리의 미래에 좀 더 긴장을 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상상은 늘 동전에 양면성이 있듯이 '유용한 행복'이거나 '비루한 불행'으로 나타난다.

모리스의 상상은 도피가 아닌, 전환점으로서 'News from Nowhere'는 현실 의 날카로운 비판이자 대안적 도시를 의미한다. 모리스는 인간이 서로 협력하고, 자연을 품에 안고, 공동체에 강제가 아닌 나 스스로 기여하는 자발적 사회를 그리고자 한 것이었다.

기술의 부정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삶의 도구로만 남기를 바랐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는 무척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술을 소유하는가, 아니면 기술에 의해 소유되는가?

모리스는 말했다. 인간다운 사회, 내 삶의 주장이 가능한 사회는 이루어 진다고. 우리가 그것을 상상하고, 믿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상도시란 결코 실현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곳을 다시 보게 하는 거울인 것이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선 우리는 스스로 묻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나와 이 세계가 정말 전부인가? 기계와 AI가 아닌 '인간에 의존하라.' 바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변화를 NO 에서 찾은 모리스의 지혜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의 '전환점에 선 도시'가 감히 기대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3.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