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초대석]김희수 건양대병원 설립자 "25년 뒤에도 환자와 가족의 삶 보듬는 의료하기를"

[중도초대석]김희수 건양대병원 설립자 "25년 뒤에도 환자와 가족의 삶 보듬는 의료하기를"

김희수 건양교육재단 설립자 겸 건양대 명예총장
아내 김영이 여사와 70여년 해로 속에 일군 삶 회상
25살 맞은 건양대병원 '진료와 교육·공공성 아우르길'
"신뢰받는 병원되어있기를, 저는 뒤에서 묵묵히 응원할터"

  • 승인 2025-05-12 18:05
  • 신문게재 2025-05-13 9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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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건양교육재단 설립자와 아내 김영이 여사가 5월 가정의달 자택 마당에서 차를 나누고 있다. 개원 25년을 맞은 건양대병원이 25년 후 신뢰받는 사람살리는 병원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이성희 기자)
서울에서 안과병원을 운영하다 47살에 고향 논산 양촌에서 중학교를 인수해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지난 50년간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그리고 대학교병원까지 설립하는 여정에 그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1953년 의과대학 동기생의 집에서 그녀를 처음 보고 마냥 좋아 쫓아다녀 스물일곱과 스물셋에 맺게 된 부부의 인연.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가 봄의 전령 산수유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변함없다. 작달막한 키에 동글동글한 이목구비, 둘이서 웃을 때 오누이 같다는 말을 오히려 반색하며 '허허' '호호' 웃는 김희수(98)·김영이(94) 부부를 가정의 달을 맞아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이들 부부가 72세와 68세에 문을 연 건양대병원의 개원 25주년을 특별히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편집자 주>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근래에 수영을 배우신다고요?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자전거 같은 운동기구를 30분 탄 후 아침 산책 다녀오는 참이에요. 저녁에는 보통 9시에 자고요. 요새도 계속 색소폰과 오카리나, 하모니카와 단소도 불고 서예도 하고 그림도 그려요. 일주일에 두 번씩 요가와 수영도 하느라 바빠요. 나이 먹었다고 해서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건 제가 아직은 그렇게 못 해요. 하루 시간표가 있어 매일 지키려 합니다. 오늘은 인터뷰한다고 해서 오전에 시간을 비워두고 점심 먹고 운동하러 가고요.

-회고록 '특별한 선물'에서 아내가 봄의 전령인 산수유꽃 같다고 하셨는데요, 겨울을 맞아 매번 봄꽃처럼 이겨낸 때문이겠죠?



▲젊어선 싸움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우리 둘 다 90살 넘었거든요. 요새는 아내가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등도 두드려 주고 그러는데 참말로 귀엽죠. 아내는 대학을 졸업하고 동기생 집에 갔을 때 처음 만난 친구의 여동생이에요. 그때는 연애도 잘 못 할 때였는데 그냥 내가 좋아서 따라다니다가 결혼해 1남 3녀 낳아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니 후회 없지요. 1953년 6·25 후 격동의 시기에 결혼했으니 함께 살아온 것이 햇수로는 벌써 70년이 넘었네요. 그 긴 세월이 어찌 이리 짧게 느껴지는지 신혼생활을 남의 집 셋 방에서 부엌도 없이 살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안채는 주인이 살고 대문 옆에 있는 방을 얻었는데 부엌이 없었죠. 어려운 시절도 잘 참아준 아내입니다. 지금도 한 방에서 같은 요를 깔고 밤에 같이 눈감고 아침에 함께 일어납니다. 함께 산 세월이 길어 그런지, 정말 우리는 점점 서로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 것 같고, 아내의 따뜻한 마음씨를 닮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요.

-건양대에 의과대학을 신설하고 대학병원을 세울 때 IMF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도 부부가 함께 해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요?

▲1997년 6월 서구 가수원동 지금의 부지에 대학병원 건설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병원 건립과정이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고, 공사를 약 30% 정도 진행됐을 무렵 IMF 외환위기가 닥쳤어요. 국내 대부분 공사현장이 중단되고 건설회사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우리 건양대병원 공사현장도 불안감이 감돌았고,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으면 공사가 그대로 중단될 것 같아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비축해 놓은 예금이 충분히 쌓여 있어, 은행의 수신금리가 크게 올라 그것만으로도 공사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 아내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죠. 공사대금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내게 그동안 알뜰히 모아둔 돈을 내준 것이죠. 작고 여리게만 보이던 아내가 그 순간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 덕분에 나는 대학병원 건립이라는 필생의 과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그 이후 아내가 다른 주머니 찬다고 남편들이 하소연할 때 저는 반대로 알뜰히 아낀 아내의 사연을 소개하고 오히려 다른 주머니를 차시라 권하고 있어요.

-25년 전 이곳에 대학병원을 세울 때 주변 생활권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죠?

▲처음엔 당연히 논산에 병원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곳은 제 고향이기도 하고, 대학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니까요.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였던 고향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꿈이 있었죠.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이 따랐어요. 논산은 당시 인구 감소가 지속하던 소도시였고, 이미 200병상 규모의 백제병원이 운영 중이었거든요. 타당성을 검토해보니, 논산에서 500병상 이상의 대학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렇다면 논산과 가까우면서도 의료수요가 충분한 곳은 어디일까 고민하다가 대전 서남부 지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대전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졌고, 충남 시·군에서도 떨어진 섬과 같은 곳에 논밭이 대부분이었죠. 당시 대전 시내에서 잘 나가던 한 외과의사는 그런 곳에 대학병원을 세우겠다는 저에게 제정신이냐고도 했으니까요. 이곳에 과거에 만수원이라는 숲이 우거진 곳이었고 돈이 없으니 대로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부터 매입해 병원을 짓기 시작해 지금은 새 병원까지 완성했습니다. 병원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과 대화 나누다 보면 이제는 잘 낫는 병원 가까운 곳에서 오히려 떠나지 못한다고 해요. 직원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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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건양교육재단 설립자와 아내 김영이 여사가 2023년 4월 건양대병원 1층에서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하모니카 공연하고 있다.  (사진=중도일보DB)
-병원이 완공됐을 때의 소감이 남다르셨을텐데요, 기억나시나요?

▲1999년 10월, 병원 건물이 완공됐고, 대지 7만2700㎡(2만 2천평) 위에 지상 10층, 지하 1층 본관과 장례식장을 포함해 618병상, 700대 주차장까지 완비된 중부권 최대 규모의 종합병원이었습니다.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죠. 함께 고생한 준비위원들과 시공사, IMF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함께 한 분들이 떠올랐어요. 최고의 의료진과 장비, 서비스로 준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편의성과 첨단 시스템에 특히 신경을 썼고요. 대전 병원 중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고, 진료 동선을 고려해 외래 진료부서를 효율적으로 배치했어요. 병실마다 전망 좋은 곳엔 휴게실과 간이 주방을 설치하고, TV는 무료로 제공했어요. 자동반송장치(ATS)와 의무관리시스템(OCS)를 도입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진료 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해 환자는 진료 후 기다림 없이 약을 받을 수 있고, 의료진은 차트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었죠. 이런 첨단 시스템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었고, 시민들이 크게 만족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요.

-작년 고대하던 상급종합병원에 지정되었을 때 감회는 어떠셨나요?

▲의료인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걸어온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의 순간이었습니다. 2024년 제5기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제 의료인생의 최고의 수간을 맞는 느낌이었죠. 사실 이 성과는 제 개인의 업적이 아닙니다. 의료진을 포함한 전 구성원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간 우리는 중증 응급질환과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진료 역량을 강화하고, 암 치료와 같은 고난도 치료 영역에서도 많은 투자를 해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어요. 위암, 대장암, 유방암, 폐암 적정성 평가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고, 관상동맥우회술 역시 최상위 등급을 기록했어요. 이 모든 것이 환자를 위한 정직한 진료, 꾸준한 시스템 개선의 결과라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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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병원이 지상 9층 432병상 규모의 새병원을 2021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앞으로 건양대병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직원들에게 자주 전하는 메시지가 지금이나 앞으로도 이 병원의 주인은 여러분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대학과 대학병원을 설립은 했지만, 공익재단에 내놓은 이상 병원이 제 것은 아닙니다. 직원들이 주인이 되어 운영하고,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할 주체라고 생각해요. 구성원이 병원 안에서 우선 만족해야 하고, 더 나아가 우리 병원을 찾은 시민들께서 불편하거나 불만족을 경험하지 않도록 저는 이제 당부하고 기대할 뿐입니다. 지금은 지역 중심의 시대입니다. 과거처럼 서울 중심의 의료 체계는 한계에 부딪혔어요. 지방에서도 중증질환을 안전하고 수준 높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의료 평등이 실현되는 것이죠. 건양대병원은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환자 중심 시스템을 더욱 정교하게 갖추고, 지역 내 중증 환자들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예요. 병원이 단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삶 전체를 보듬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사람을 살리는 병원, 신뢰받는 병원'으로 계속 남기를 소망하며, 저 또한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지켜보려 해요.

-25살 맞은 건양대병원이 앞으로 25년 지나 2050년 후 어떤 병원이 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시나요?

▲사람을 위한 병원, 시대를 담는 병원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건양대병원은 단순한 의료기관이 아닙니다. 인간과 기술,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살아있는 공동체입니다. 25년 전 대학병원을 세울 때 진료와 교육, 나아가 공공성까지 아우르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병원을 세운 이유이자, 앞으로도 이 병원의 주인들이 지켜야 할 사명입니다.

대담=고미선 사회과학부장·정리=임병안 기자·사진=이성희 부장 victorylba@

1999년10월15일자
중도일보 1999년 10월 15일자 보도를 통해 건양대병원 준공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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