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 중이던 노트북 컴퓨터를 덮어 버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산기슭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도 나왔다. 부부로 보이는 사람, 친구 같은 사람, 연인처럼 눈길을 끄는 사람, 모두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애들과 함께 나온 엄마한테서는 모성애가 묻어나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목줄 맨 애완견을 끌고 오는 아가씨가 있었다. 하얀 털에 목 방울까지 달고 졸랑졸랑 따르는 강아지가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 마디 건넸다.
"주인이 예쁘니까, 너도 주인을 닮아 꽤나 예쁘게 생겼구나!"
그 한 마디에 아가씨 얼굴이 환해졌다. 너무 좋아했다. 동시에 아가씨 입이 귀에 걸리는 듯했다. '예쁘다'는 한 마디였지만 약효는 좋았다. 여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예쁘다'는 말에는 귀가 얇아진다. 말 한 마디에 이런 반응이 바로 나오는 걸 보면 '예쁜 것'이 좋긴 좋은가 보다.
며칠 전에는 내가 잘 가는 빵집에 빵을 사러 갔다. 아르바이트 여대생인지 상냥하게 맞아 주었다. 친절과 상냥함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 한 마디 던졌다.
"아가씨, 얼굴도 예쁘고, 친절에 상냥까지,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따로 없군요."
'예쁘다'는 말에 맛있는 빵 한 개를 더 주는 거였다. 역시 칭찬은 위력이 대단한 거였다.
'예쁨'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니, 그에 관련된 '효빈(效?)'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동시(東施), 서시(西施), 중국고대 4대 미인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효빈(效?)'은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월나라의 미녀 '서시(西施)'가 속병이 있어 눈을 찡그리고 다녔는데, 그를 본 못생긴 여자들이 눈을 찡그리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눈을 찡그리고 다니면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남의 흉내나 내는 것을 이르는 말임에 틀림없다.
추녀인 동시(東施)와 미녀인 서시(西施)는 한 마을에 살았다. 서시(西施)는 서쪽에서, 동시(東施)는 동쪽에서 살았는데, 이 두 사람은 미녀와 추녀를 대표하는 여인들이라 하겠다.
중국 고대 4대 미인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 우희>를 두고 이르는 말인데, 이들이 천하일색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삶의 과정이 모두가 순탄하지를 못했다.
이들은 예뻐서 한 시대의 분란을 일으킨 여인들이었다. 양귀비 같은 미인은 당나라 현종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나라를 망하게 했고, 그녀의 인생 말로는 왕의 부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불행한 여인이었다.
얼굴 예쁘고 잘 생긴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마음이 예뻐야 한다.
효빈 고사에 나온 추녀 동시는 예쁜 서시처럼 살고 싶어서 찡그리고 다녔다.
서시는 속병이 있어 찡그리고 다녔는데, 찡그리면 무조건 예뻐 보이는 줄 알았던 것이다.
추녀 동시가 예쁜 걸 갈망했던 것처럼, 우리는 따뜻한 가슴으로 살려는 흉내라도 냈으면 좋겠다.
외모가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슴이 따뜻하고 내면이 예쁘게 살아야겠다.
예쁘더라도 비단보에 싸인 개똥으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비단보에 싸인 보석으로 살아야겠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란 말을 듣는 삶도 괜찮을 것 같다.
'효빈'이 가르쳐준 교훈, 우리는 외모가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비단보에 싸인 개똥으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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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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