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
그런데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유는 일제 침략과 강제 병합으로 인한 국권 상실에 대해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항일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정부 여당 등 사회 일각의 역사 세탁-왜곡이 진행되고 광복회 등 항일운동단체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된 지 78년이 되었고,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5년이 지났음에도 이러한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황망하고 참담한 심정이다.
5대 국경일은 '대한민국'의 기초를 쌓은 것은 기념하고 대대손손 전승하기 위해 법률로 정한 날이다. 대한 독립과 민주공화제를 주창한 3.1절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한 광복절,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확립한 제헌절, 유구한 역사를 지켜올 수 있게 한 개천절과 세계 150여 글자 중에 유리하게 창제 이력이 분명한 한글날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증거이다. 그럼에도 광복(光復)이 부정되고 건국(建國)을 억지 부양하는 짓을 벌이면서 나라가 혼돈에 빠지고 있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등재의 원칙은 진정성이다. 2015년 일본정부는 '군함도(하시마)' 등 근대산업시설의 등재 당시 조선인 강제 노동 등 유산의 전체 역사를 삭제하고 강제노동 시설을 가리고 일부만 소개하는 것에 대해 유네스코는 강제노동 사실을 적시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고, 이번 사도 광산도 심사 단계에서 강제노동 사실 등을 표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강제노동' 부분을 삭제한 체 등재에 합의하였다. 더구나 주무 부처인 국가유산청의 요구에도 외교부가 무시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두 개의 사례는 묘하게 닮아있다. 그것은 역사를 편의에 의해 비틀고 짜깁기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역사를 진정으로 온전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서산 부석사 불상 재판과정에서 나온 피고 검찰의 항소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고려 때의 부석사가 현재의 부석사가 아니다"라며 그 이유로 소실로 인한 폐사의 가능성을 거론하였다. 마치 "정부청사가 소실되었으니 정부가 사라졌다"라는 논리이다. 물질적 요소만 중시하고 정신 문화는 무시하는 발상이다. 이에 재판부는 부석사의 역사성과 동일성을 인정함으로 항소이유를 배척했다. 지금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도 일제 강점으로 국권이 상실되었으니 마치 국민이 없어졌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역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주장이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과정에서 문화재 반환은 주요 의제이었다. 당시 한국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였고, 일본은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한국전쟁의 피해로 상심한 한국민을 위해 '기증'한다고 하였다. 결국, 협상은 '인도'로 매듭하면서 일본은 최종적, 불가역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환수 노력을 통해 '북관대첩비', '영친왕비 복식', '조선왕조도서'의 반환이 있었다. 건국절 주창론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약탈문화유산의 반환은 불가능하다. 오직 일본 측의 선처에 따를 뿐이다.
유산은 역사를 저장한다. 역사를 온전히 전승하려면 유산을 진정으로 대해야 한다. 국경일도 우리 역사를 간직한 유산이다. 그래서 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향유하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국가의 책임이다. 역사의 퇴행을 막고 올바로 정립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 이 역사의 과업을 광복 100주년이 되기 전에는 바로 잡아 국가의 정체성을 바로 정립해야 할 절실한 과제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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